한국일보

안식년

2012-09-2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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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하는 삶

▶ 김범수 <치과의사>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이른 저녁부터 졸음이 쏟아진다. 예전에는 밤늦게까지 투나잇 쇼 같은 심야방송을 보면서 심신의 피로를 풀었는데 요즘은 저녁 먹기가 무섭게 소파에 기대어 잠이 든다. “먹자마자 누우면 소 된다!”고 말리시던 어머니가 이젠 안 계셔서일까? 운동에 대한 관심도 멀어지고 두 어깨가 어딘가 붙는 순간 바로 드르렁 쿨쿨이다.

일도 안하고 날마다 여덟 시간 수면에 책이나 잔뜩 쌓아놓고 읽는 안식년이 내게도 있다면?

한국의 공공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안식년 제도를 거론한 것은 1980년대의 일이다. 85년도 한 종합일간지는 이렇게 안식년을 소개한다. ‘안식이라는 단어에서는 기독교 냄새가 난다. 구약과 신약에서 자주 다루어지는 이 단어가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쓰이지 않기 때문이다. 성경 속에서 그렇게 강조되는 것을 보면 ‘안식’은 꽤나 중요한 일인 모양이다. 구미 각국이나 선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이 안식년을 우리 정부도 국립대학 교수를 대상으로 내년부터 도입한다는 소식이다.’(중략)


이렇게 시작된 한국의 안식년 개념은 초창기 일반 사기업에 와서는 거의 지켜지지 못했다. 연구직 종사자들이 주어진 기간에 마음 놓고 ‘안식’을 취하다가 직장에 돌아와 보면 자기 책상이 없어졌거나 고급 사무직에서 임금이 적은 임시직으로 밀려나 있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90년대에 들어서는 한국 내 대부분의 대학과 민간연구소를 중심으로 안식년 제도가 활성화되면서 이 기간에 자유롭게 해외 연구기관이나 대학에서 선진기술을 습득하는가 하면 미루었던 리서치에 심혈을 기울여 학계를 놀라게 하는 학술논문이나 기술개발 사례들이 크게 늘어났다.

하지만 한국에서 안식년이 처음 시작된 것은 무려 15세기, 세종대왕 때의 일이다. 매서운 추위가 몰아닥친 어느 겨울, 밤 깊도록 집현전에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아뢴 내관을 앞세우고 임금이 직접 그곳에 가 보니 불기도 사그러져 추운 당직실 안에서 젊은 학자, 신숙주가 글을 읽고 있다가 잠이 들은 것이 아닌가. 워낙 학문에 뜻이 높았던 임금은 수달피로 만든 어의를 벗어 손수 그에게 덮어주고 어전으로 돌아온다. 날이 밝아 깨어난 신숙주는 밤새 임금께서 들렀다 가심을 깨닫고 황공한 은총에 감격하여 더더욱 연구에 몰두한다.

그런데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 아니다. 세종대왕은 곧이어 신숙주와 성삼문 같은 집현전 젊은 학자들 몇몇을 선발해 휴가를 주며 공무에 종사하는 대신 집에 가서 책읽기와 학문 연구에만 몰두하도록 했다. 이것이 바로 ‘사가독서’(賜暇讀書)라는 일종의 안식년 제도가 아니었을까?

지난 여름 안식년을 맞아 LA에 오신 여러 선교사님들을 만났다. 많은 분들이 대학원의 신학강의를 수강하거나, 부족하다고 느낀 분야의 공부를 위해 중앙도서관으로 출퇴근을 하는 것을 보았다. 멘토가 되는 선배 또는 스승을 찾거나 장·단기 세미나에 참석해 말씀에 더 가까이 가려는 모습도 보았다. 선교지에서는 갈 수 없던 새벽예배를 찾아 날마다 달고 오묘한 말씀에 빠지는 분도 있었고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중보기도하시는 분도 있었다.

개업한지 벌써 28년째다. 단기 선교여행을 빼고는 제대로 휴가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나에게도 안식년이 주어진다면? 공부는커녕 아마 시작도 해보기 전에 행복해서 죽을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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