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조선과 윤내현

2012-08-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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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 송순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지난 6월 초 평양을 다녀오는 길에 서울에 잠시 체류할 때 시간이 있어 강남의 교보문고에 책 구경을 갔습니다. 그때 금년 6월11일 발간된 김상태라는 저자의 ‘엉터리 사학자 가짜 고대사’라는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서점에 진열된 지 2,3일밖에 안 되는 따끈따끈한 신간이었는데, 그 책에 관심이 간 데는 사연이 있었습니다.

그 책을 만나기 며칠 전 평양에서 우리 일행의 북한 담당관에게 중국의 ‘동북공정’에 관해서 아느냐고 물었더니 전혀 모른다고 해서 제가 아는 대로 몇 마디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 때문에 스스로 고조선의 역사에 관하여 좀 더 알고 있어야 되겠다는 부담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500페이지가 넘는 책이라 다소 짐스러웠지만 결국 샀는데, 한국 고조선사에 관해 비평한 책이라서 어느 학자의 고조선사 한 권을 읽는 것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 싶어서였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한달간 저는 그 책을 흥미진진하게 읽었고, 구입하기를 열 번 잘했다 싶었습니다. 그 책으로 우리나라 고조선사에 폭넓은 시야를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대단한 집념과 노력으로 책을 쓴 저자에게 많이 감사했습니다. 특히 고조선사에 아주 중요한 인물, 윤내현과 그의 고조선사를 알게 된 것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윤내현 교수! 그는 일제의 한국역사 왜곡과 중국의 ‘동북공정’이라는 역사학적 침공을 막아낼 수 있도록 분명하고 방대한 자료와 고증으로 우리 고조선사를 다시 써 준 분입니다. 오해해서는 안될 것은 그가 ‘동북공정’을 막으려고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이미 30년 전, 우리의 고조선이 평양 부근에서 멸망한 부락 단위의 작은 국가가 아니었음을, 단군임금과 기자조선, 위만조선들이 자료가 없는 신화적인 역사가 아님을, 그리고 고조선이 멀리 북방의 만주와 서쪽의 북경 근방, 남쪽의 요하 주변까지 벋은 거대한 영토의 국가였다는 것을 중국의 고대 역사와 한국의 고대설화 연구로 밝혀냈습니다. 원래 중국 고대사학자였던 윤내현은 중국 고대사를 연구하다가 올바른 고조선을 발견한 것입니다.

1983년, 그가 44세의 나이로 ‘기자신고’라는 논문으로 새로 발견한 고조선사를 펴냈을 때, 한국의 사학계는 발칵 뒤집혔다고 합니다. 일제의 축소형 고조선사에 안주했던, 치열한 연구 없이 그야말로 놀고먹던 사학계 원로들이 체면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윤내현은 ‘선배교수에 대한 예의도 모르는 놈, 사상적으로 의심스러운 놈, 남의 것 베껴먹기나 하는 놈, 역사를 정통으로 공부하지 못한 놈, 독재정권에 도움을 준 놈, 비민주적 사고를 가진 놈, 시대에 뒤떨어진 놈 등으로 매도되었’습니다. 심지어 ‘북한 추종자’라는 비난까지 받았습니다.

기존의 학계는 그의 논문을 반증할 학적인 자료를 제시할 수 없게 되자, 인신공격으로 그를 매도했고 비겁한 방법으로 윤내현을 왕따시켰던 것입니다. 그러나 윤내현은 그 후 30년을 지나 오늘날까지 혼자서 묵묵히 연구를 계속했습니다. 그 결과로 ‘상주사’(商周史), ‘한국 고대사 신론’ ‘고조선 연구’ ‘우리 고대사-상상에서 현실로’ 등 다수의 고조선 연구서를 발표할 수 있었고, 교과서까지 수정하게 하였습니다. 아울러 주변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겸손한 연구로 중국의 ‘동북공정’을 반증할 수 있는 소중한 성과까지 거두었습니다.

윤내현은 말합니다. “학문은 스스로 틀을 깨는 작업입니다. 내가 쓴 논문이라도 세월이 지나 잘못된 점이 발견되면 남이 지적하기 전에 먼저 고치는 것이 학자의 도리입니다.”

선후배 학자들에게 던지는 뼈있는 말이었습니다. 그런 윤내현 교수가 나는 못내 고마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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