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8-2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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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질을 한다, 잡풀과 쓰레기와 먼지들이 서식하는
밭, 아버지는 밭 주인의 묘를 벌초해주기로 하고
몇 년이나 묵혀있는 그 밭을 갈고 있다.
잡초가 무성한 환자의 배를 수술하듯이,
신문과 텔레비전에 마취된 이 땅의 피부에 보습날을 댄다.
잡초로 뒤덮인 땅들이 뒤집어지고 부드러운 흙들이
태어난다. 지렁이가 모습을 나타내고 굼벵이가
어려운 걸음을 나선다. 빛 바랜 신문지가 아득한 사건 속으로
묻히고, 신문지 속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수천의 뼈들이
일어선다. 이러이러 아버지는 소리를 질러대며
채찍을 휘두르고, 황소는 깜짝 놀라 펄쩍 뛴다
굼벵이도 그것을 맞고 움찔거리고, 수천의 뼈들도 그것을 맞고
희게 빛나고, 신이 난 보습날이 그들 사이를
다시 한번 지나간다. 날 끝으로 뼈조각을 묻어오고
뼈조각이 날 끝에서 땀을 흘린다. 이제는 뼈조각이
쟁기질을 하는지. 아버지와 황소는 힘든지 모르고,
해가 넘어가도 넘어가지 않는 가난으로
쟁기질 한다 쟁기질 한다.

차창룡(1966 - ) ‘쟁기질1’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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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아엎기에 쟁기만한 것이 있을까. 잡초로 뒤덮인 땅들이 뒤집어지고 보습 사이로 부드러운 흙들이 태어난다. 죽음의 상징인 뼛조각들이 솟구쳐 올라와 희게 빛난다. 아버지의 쟁기질이 신문과 텔레비전에 마취된 이 땅의 정신마저도 파헤쳐 갈아엎고 있다는 상상 속에서 더욱 신명이 난다. 한국은 대선 정국이다. 시원하게 쟁기질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는 하는 걸까.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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