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치킨 게임’

2012-08-23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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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게임’이란 것이 있다. 한 쪽이 양보하면 별 일 없지만 양보한 상대방은 ‘겁쟁이’(chicken)란 놀림을 받게 된다. 따라서 양쪽 모두 나중에 더 큰 피해를 보는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 피를 보게 된다.

어렸을 때 애들끼리 장난으로 해 보는 이 게임을 어른이 돼서도 하게 되면 비극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그 한 예가 길 양쪽에 차를 세워두고 정면충돌 할 것처럼 서로 모는 것이다. 한쪽이 피하면 그만이지만 둘 다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결국 큰 사고가 나 둘 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이런 게임은 나라 간에도 종종 벌어진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1962년 있었던 쿠바 미사일 사건이다. 소련이 미국과 코를 맞대고 있는 쿠바에 핵무기를 배치하려 하자 미국은 쿠바를 봉쇄하고 이를 강행할 경우 핵전쟁을 불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당시 미국에 비해 열세였던 소련이 슬그머니 꼬리를 빼는 바람에 무사히 끝났지만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면 어떤 사태가 벌어졌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 사건 후유증으로 흐루시초프는 실각하고 소련은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다 국가 재정이 파탄나 결국 자멸의 길을 걷게 된다.

요즘 워싱턴에서도 ‘치킨 게임’이 한창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타협이 이뤄지지 않는 한 내년 1월 1일자로 5,000억 달러에 이르는 예산 삭감과 세금 인상이 자동적으로 이뤄지게 돼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가까스로 대불황에서 기어 나오고 있는 미국 경제는 또 한 번 불황을 겪게 될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중립적 연구기관인 의회 예산국(CBO)는 22일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경우 미국 경제는 내년 상반기 심각한 불황에 빠질 것이란 암울한 보고서를 내놨다.

예산국은 ‘재정 절벽’으로 불리는 이 사태가 발생할 경우 실업률은 내년 말 9%를 넘어서고 2014년에도 8%를 웃돌게 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지난 1월 전망보다 매우 어두운 것이다. 이처럼 전망치가 더 나빠진 것은 미국 경제가 생각보다 느리게 회복되고 있는데다 연방 의회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임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페이롤 택스 감면과 실업 수당 연장도 내년 1월 동시에 끝나기 때문이다.

‘재정 절벽’은 내년도 경기를 어둡게 할 뿐 아니라 올해 경기도 둔화시키고 있다. 내년 세율과 정부 지출이 어떻게 될 지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개인이나 기업 모두 소비와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모든 미국인에게 감세 혜택을, 민주당은 가구당 연소득 25만 달러 이하만 감세를 고집하고 있어 타협이 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대선을 코앞에 둔 양당 중 어느 한쪽이 양보해 상대방에 승리를 안겨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선거가 끝난 후에도 지금처럼 의회와 행정부의 권력이 양분된 상태로는 타협이 어려워 보인다. 가뜩이나 어려운 미국 경기가 내년에도 좋아지기는 힘들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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