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또 한 해가 간다. 새해를 맞이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하루하루가 때로는 지루하게도 느껴졌다. 세월의 흐름은 그런데 빨라도 너무 빠르다. 가을인가 싶었는데 추수감사절이고 크리스마스에, 이제 며칠 지나면 새해다.
정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쉬움이 더 많았다고 해야 하나. 올해 2025년 을사년(乙巳年)과도 이제 작별할 때가 된 것이다.
한 해, 한 해. 또 한 해…. 미국 생활이 길어지다 보면 자꾸만 잊히어지는 것이 있다. 한국어, 모국어다.
단어가 언뜻 생각이 안 난다. 그리고 더러는 생경하게 들린다. 그러다보니 단어들의 뜻도, 적정한 쓰임새도 잊거나 혼동하게 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때를 가리키는 단어가 그렇다. 모세(暮歲), 설밑, 세만(歲晩), 세말(歲末) 세모(歲暮). 세저(歲底), 세종(歲終), 연말(年末), 연종(年終) 등 여러 단어가 있다.
그 중 한 동안 세모(歲暮)라는 말이 널리 쓰여 졌다. 말 그대로 한 해(歲)가 저문다(暮)라는 뜻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세모라는 말은 슬며시 사라졌다.
뒤늦게나마 한국의 국립국어원이 일본식 한자어라는 지적과 함께 ‘세밑’으로 사용하기를 권장하고부터라고 한다.
세밑의 ‘세(歲)’는 한자어의 해를 뜻하고 ‘밑’은 순수 한국어로 세밑은 한해의 밑, 한해의 마지막, 한해의 끝이란 뜻이다.
연말에 한 해를 보내며 갖는 모임을 일컫는 단어도 그렇다. 한동안 망년회(忘年會)란 말이 주로 사용됐다.
그러던 것이 송년회(送年會), 또는 송년모임으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역시 일본식 한자어이므로 국립국어원이 바꿔서 사용할 것을 권고한 때문이다.
송년회(送年會)는 묵은해를 모내고 새해를 맞이한다는 송구영신(送舊迎新)에서 나온 말로 술이나 마시며 한해를 잊는다는 망년회보다 긍정적인 뉘앙스를 담고 있다.
송년회는 또한 한국의 오랜 풍습이었던 수세(守歲)와도 그 의미가 맞닿아 있다.
집 안팎을 깨끗이 청소한다. 세찬과 차례를 위한 음식을 준비한다. 사당에 절을 하고 어른에게도 묵은세배를 드린다. 그리고 밤새도록 불을 밝힌다. 묵은 것을 불로 태우고 새해를 맞는다는 송구영신의 의미다, 이런 방식으로 섣달그믐에 수세를 했다.
묵은세배를 올리는 것은 어른들 덕분에 한 해를 잘 보냈다는 인사다. 세찬은 정월 초하루 설날을 치루기 위한 음식으로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게 준비되고 또 여럿이 나눠 먹는다.
이 세찬과 관련해 특기할 것은 조선조시대에는 윗사람이나 상급관리가 아랫사람에게 보낸 것으로 주로 마른 생선, 밤, 곶감, 술 같은 것이 보내졌다. 이렇게 수세를 하고 설날 아침을 맞이했다.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이 아니다. 물질적으로는 모든 것이 예전보다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사람끼리 주고받는 정이 어딘가 메마른 듯해서다. 특히 이민생활이. 그리고 그저 얼굴 내밀기 행사라고 할까. 송년 모임도 그렇게 보이는 경우가 많아 보여서다.
이제 사흘만 지나면 있으면 2025년 을사년(乙巳年)은 과거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병오년(丙午年) 새해다.
몸과 마음을 깨끗이 정돈하고 주변을 돌아보며 새해맞이를 준비를 하는 세밑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