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강간 임신 불가설’

2012-08-22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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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과 관련한 조크가 있다. 한 여권운동가가 신에게 불평을 했다고 한다. 임신과 출산은 남녀가 함께 한 행위의 결과인데 여성만 진통을 겪는 것은 부당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들은 신이 해결책을 제시했다. 여성이 출산할 때 상대 남성도 똑같이 진통을 겪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여성이 다시 신을 찾아와 원래대로 되돌려 달라고 간청했다. 이유인즉 이 여성이 진통을 시작하자 남편은 멀쩡하고 엉뚱한 남성이 진통을 하게 된 것이었다. 필시 ‘여권’이나 ‘페미니즘’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남성들이 만들어낸 조크일 것이다.

남성에게 있어서 영원한 미지의 영역은 임신과 출산이다. 그런데 이 사회가 전통적으로 남성중심 사회이다 보니 때로 남성이 모르는 영역에 관해서도 남성중심의 ‘이론’이 만들어지곤 했다. 미주리의 토드 에이킨 연방하원의원(공)이 며칠 전 이런 ‘이론’을 들고 나왔다가 지금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지난 19일 그가 세인트루이스의 한 TV 방송과 인터뷰를 할 때였다. 6선 하원의원인 그는 연방상원선거에 출마해 클레어 맥캐스킬 현 상원의원(민)과 맞서 싸우는 중. 티파티의 지지를 받아 공화당 후보로 선출된 만큼 그는 대단히 보수적인 인물이다.

인터뷰 중 낙태 이슈가 나오자 그는 절대 반대 입장을 강조했다. 강간에 인한 임신도 예외가 아니라며 들고 나온 것이 ‘강간 임신 불가설’. ‘적법한 강간’ 다시 말해 법적으로 강간에 해당되는 행위를 통해서는 임신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여성의 몸은 신비롭게도 모든 기능을 차단해서 임신에 이르지 못한다는 ‘이론’이다.

그의 발언이 알려지자 가장 신이 난 것은 상대후보인 맥캐스킬 상원의원. ‘한 여성으로서 그리고 강간 케이스를 수백건 다룬 전직 검사로서’ 볼 때 그의 발언은 강간 피해자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준다고 반격을 가했다. 민주당, 여성단체들이 벌떼같이 일어나고 미트 롬니는 대선전에까지 불똥이 튀길세라 서둘러 선을 긋고 나섰다.

특히 당황한 것은 공화당 지도부였다. 올 가을 선거를 기해 상원 다수당 자리를 노리면서 공화당이 그중 만만하게 본 것이 미주리였다. 초선인 맥캐스킬의 지지도가 워낙 낮아서 웬만큼만 하면 공화당이 빼앗을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에이킨이 엉뚱한 발언으로 사고를 친 것이었다.

그렇다면 강간으로는 임신이 안된다는 주장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연방질병통제센터에 의하면 강간으로 인한 임신율은 5% 정도. 연간 3만2,100여건의 임신이 강간에 의한 것이다.‘강간 임신 불가설’은 과학적으로 근거가 없다는 증거이다.
여성이 임신을 했으면 그건 ‘진짜 강간’은 아니라는 증거, 여성도 동조했다는 증거란 주장은 사실 처음은 아니다. 낙태를 절대 반대하는 보수적 정치인들이 비슷한 주장을 내세우곤 했는데 그 뿌리를 캐보면 13세기 영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이킨의 발언이 뉴스가 되자 영국의 가디언지 블로그에 한 의학사학자가 글을 올렸다. 1290년경 영국의 법조문 중에 강간당한 여성이 임신을 했으면 강간에 대한 벌을 경감한다는 조항이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여성이 동의하지 않았으면 임신을 할 수가 없었으리라는 것. 법조계, 의학계, 정계 … 사회 각 분야에 남녀가 공히 진출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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