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행복지수

2012-08-2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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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취와 날파리 등으로 인해 우리 선교팀은 숨조차 쉬기 힘들었던 필리핀 사깅안 판자촌 안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무허가로 판자집을 다닥다닥 지어놓고 그 자체에 만족한 듯 살아가고 있었다. 골목골목에서 대낮에도 웃통을 벗은 남자들의 술잔치가 가라오케와 더불어 시끄럽게 벌어졌고, 그 옆에서는 티셔츠 하나에 슬리퍼만 신은 어린아이들이 거미를 잡아 누가 실을 더 길게 빼는지 내기로 즐거워했다.

그러다 오후에 한 두 시간씩 집중적으로 비가 내리면 동네 이곳저곳에서 여자들이 옷을 입은 채로 비누를 풀어 머리도 감고 목욕도 하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눴다. 사깅안에서는 학교 갈 나이의 청소년기 아이들이 나가서 돈을 벌어와 나이 어린 형제자매들과 일하지 않는 부모의 생활비를 댄다. 이러한 환경도 감사해 하며 나름대로 행복해 하는 현지인들, 그들을 보며 ‘행복’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인생관, 적응력, 건강, 돈, 인간관계, 야망, 자존심 등을 기반으로 산출되는 행복지수는 누가 어디에 더 집중해서 측정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 영국신경학재단(NEF)의 발표에 의하면 조사대상 143나라 중 필리핀의 행복지수는 상위권인 반면 한국은 하위권이다.


이미 필리핀인들의 행복지수가 세계 상위권이라고는 들어왔지만 그 실상에 대해서는 이곳에서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실감하였다. 85% 이상이 가톨릭 신자로 피임과 이혼이 허락되지 않는 나라, 그 영향으로 다산의 일반화되고 교육기회의 불평등도 심하지만 이들은 이를 불평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필리핀 장애사역을 마치고 들렀던 한국의 길거리에는 폐기물 수거딱지들과 갖다 쓰면 충분히 10년은 더 쓸 만한 가정용품과 가구들이 널려 있었다. 물질은 이처럼 넘쳐나지만 과연 사깅안의 사람들보다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성형으로 외모가 비슷비슷해진 한국의 분주한 사람들이 떠오르면서 드는 이 안타까운 마음은 무엇일까


<조은미/SAC주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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