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메뉴가 최고야!

2012-08-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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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하는 삶

▶ 김범수 <치과의사>

세계인의 축제 올림픽이 막을 내렸다.

정말 기특하다. 장하다. 한국 종합성적 5위!(총 메달 개수로 계산하는 미국·유럽식으로는 9위) 선수들 모두 앵글로 계통 못지않은 늠름한 체격들이다. 대체 뭘 먹고 저렇게 쑤욱 쑥 잘도 컸을까? 훈련과정 동안 선수들을 위하여 평소에는 균형 잡힌 영양식으로 선수들을 위한 특별 메뉴가 준비되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한국 선수단의 식사를 담당하는 한 영양사가 취재기자에게 공개한 바로는 해외경기일수록 ‘가정식 백반’이 늘 최고의 인기 메뉴란다. 올림픽위원회가 하루 24시간 제공하는 카페테리아의 서양식 부페보다는 집에서 먹던 깔끔한 국 한 그릇과 밥 한술이, 객지에 나간 선수들의 속을 달래주는 가장 편안한 밥상이었다는 설명이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점심시간이면 무엇을 먹을까 고민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코리아타운 한복판에 있으니 한 발자국만 나가면 식당이 즐비한데 그래도 날마다 오늘은 또 무얼 먹나? 하고 함께 일하는 간호사들에게 묻는다. 피자요! 타코요! 월남국수요! 신세대 젊은 간호사들의 취향은 소위 ‘쉰 세대’로 불리는 나의 입맛과 다르다.

여러 가지 특식으로, 더위 먹은 여름 낮의 입맛을 살려보려 애쓰지만 시중에서 사먹는 음식들은 거의가 너무 짜거나 너무 맵거다. 대부분 짜릿하고 자극적이다. 이런저런 모임에서 초호화판의 음식들이 접시마다 가득가득한 것을 보면 이거 모두 한꺼번에 주지 말고 차라리 된장찌개라도 하나만 맛있게 만들어주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속으로 투덜거린다.

그렇다면 도대체 옛날 임금님들은 허구한 날 그 많은 음식을 어떻게 드시고 살았을까? 날마다 끼니마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린 산해진미를 보면 임금이라도 ‘에잇! 그만 물려 내거라!’ 하며 싫증을 내지 않았을까?

조선시대 왕들의 식사 스케줄을 보면 하루 다섯 차례의 수랏상이 올라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침, 점심, 저녁에 이른 아침의 초조반상과 깊은 밤의 야참이 보태어진다. 팔도 각지에서 진상된 최고급 특산물로 지어진 풍성한 식탁. 그러나 후대의 궁중요리 전문가들이 조선왕조실록 등을 토대로 재현한 수랏상의 사진자료를 보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처럼 기름진 음식을 산더미처럼 쌓아올린 것이 아니다. 평상식으로는 검은 옷칠로 윤을 낸 소반에 진지와 탕(밥과 국), 그리고 반찬가지들이 담백하고 정갈하게 담겨있을 뿐이다.

교회에서는 대심방 기간에 목회자들이 이어지는 교인들의 극진한 음식대접을 거절할 길 없어 결국 배탈이 났다는 이야기를 종종 들었다. 저마다 ‘우리 목사님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떡 벌어진 요리상을 차려내니 저녁 무렵이면 불어 오른 위장에 탈이 날 수밖에.

한의학이 권하는 장수의 비결은 공자가 논어에서 군자의 도로 언급한 ‘식무구포’(食無求飽)의 컨셉이다. 직역하면 배부름을 구하지 않는다는 뜻이지만 아무튼 제대로 자알~ 살려면 배불리 먹는 것을 삼가라고 말한다. 장수를 기대해서가 아니라 그저 물에 만 찬밥에 깍두기 하나, 더운 여름날 이보다 더 맛난 메뉴는 없다.

그러고 보면 올림픽은커녕 동네축구에도 못 나가 보고, 임금도 아니고, 심방을 따라다녀야 할 대형교회 교인도 아닌, 이름 없는 내가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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