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아침의 시

2012-08-14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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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 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 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메고는
여러분의 행렬(行列)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심훈(1901 - 1936) ‘그 날이 오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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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의 날에 더덩실 춤을 추고 울며 뛰며 뒹굴겠다고 한다. 우리 한국인은 흥이 많으며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다. 죄를 지은 일본인의 것이 아니라 ‘이 몸의 가죽’을 벗겨 북을 만들어 축하행렬의 앞장을 서겠다니 말이다. 과연 패전 후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은 해코지를 당하지 않고 무사히 일본으로 돌아갔으며, 친일을 한 사람들은 벌을 받기는커녕 권력과 부를 누렸다. 그래서 만만해 보이는 걸까. 좋은 이웃인 척 하던 자들이 다시 발톱을 드러내고 있다.


<김동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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