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진화론과 창조론

2012-08-1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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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일상, 깨달음

▶ 송순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솔직히 말씀 드려 저는 교회가 설명하는 창조론을 과학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의 첫 머리에 기록된 창조 이야기를 과학적 방법으로 반증하려는 것은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창조를 이루셨다는 것은 태초의 인간에게 세상의 온갖 사물을 질서를 갖추어 인식하게 하셨다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김춘수가 ‘꽃’이란 시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이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표현하는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물의 이름(언어 또는 말씀)을 불러주심으로 사물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셨다고 보았습니다. 이름을 모르는 사물은 우리의 의식에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의 그 어느 하나가 이름을 가질 때만 그것은 내 인식 속에 탄생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창세기의 말씀의 창조는 우주의 존재에 질서를 부여하시고, 이름을 붙여 인간의 인식 안으로 넣어주셨다고 보았습니다. 그것이 창조였고, 방법은 말씀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창조는 신앙적 인식론으로 이해해야지, 과학적으로 변증하려는 것은 무리라고 보았습니다.


헌데, 저는 최근 두 권의 책을 읽고, 제 생각을 고치게 되었습니다. 한 권은 ‘왜 종교는 과학이 되려 하는가?’이고, 또 한 권은 ‘우주와 생명의 기원/Origin’입니다. 첫 번째 책은 제리 A. 코민 교수(시카고 대학 생태진화학)를 비롯, 생물학자 및 물리학자 열여섯 분의 논고들을 엮은 것이고, 두 번째 책은 아리엘 A. 로스 교수(로마린다 대학교 생물학)가 집필한 것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두 책을 읽으면서 일반인들처럼 가지고 있던 저의 진화론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많이 떨어지는 반면, 하나님의 창조를 단순하게 인식론 정도로 여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진화론에 숱한 문제와 증명 불가능한 연결고리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 ‘왜 종교는 과학이-’에서 문제를 논하는 과학자들의 태도와 언어는 너무나 오만하다는 것입니다. 진화론이 아니면 어떠한 과학도 존재할 수 없다는 식의 논리가 저를 실망시켰습니다.

지난 200년간 다윈에 의한 진화론이 발전해 왔다고 해서 그것만이 과학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우주방정식에서 출발한 ‘빅뱅’ 이론도 일반인들은 접근도 못할 정도로 어렵고 대단해 보이지만 최근 영국 BBC에서 방송했다는 ‘빅뱅’을 둘러 싼 과학자들의 논쟁 다큐멘터리에서는 한 과학자가 “빅뱅이요? 그런 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학에도 절대라는 영역은 없습니다. 인간의 지식이라는 것이 우주의 넓이에 비하면 바닷가의 모래 한 알갱이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독선적인 이론은 그 자체가 이미 허점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 종교는 과학이-’에서 과학자들은 진화론이 아니면 인류가 퇴보라도 하는 것처럼 위협하는 논지로 독자를 불쾌하게 하였습니다. 반면에 로스 교수의 ‘생명의 기원’은 독자들에게 친절하게 창조와 진화의 제반 문제를 서술, 일반인들이라도 콧대만 세우는 과학자들을 검증을 수 있는 과학적 자료를 제공해 주었고, 하나님의 창조를 다시 생각하게 했습니다.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미국인이 35%인 반면에 하나님의 창조론을 받아들이는 수는 45%이라고 합니다. 여론조사에서 학교가 진화론과 창조론을 동시에 가르치게 하자는 미국인 수가 3분의 2를 넘었다면 그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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