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람들이 모르는 그곳

2012-07-2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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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하는 삶

▶ 김 범 수 <치과의사>

말 안 되게 구는 직장상사가 아니꼽고 끝없이 쏟아지는 일거리가 지겨워서 내 삶이 이게 뭔가 라고 불평하던 친구 하나가 인도양의 무인도로 휴가를 다녀왔다.

아무도 없는 섬에 가서 잔소리하는 마누라 얼굴 안 보고 혼자 로빈슨 크루소 같이 살아보는 게 평생 소원이라던 친구는 한 달 일정을 앞당겨 2주만에 돌아왔다. ‘개인 섬’ 전문 여행사에서는 하늘이 푸르고 바다가 끝없이 펼쳐진 진짜 무인도에 달랑 친구 한 사람만을 내려주고 며칠 뒤 정해진 날에 다시 데리러 온다며 보트를 돌려 떠났다. 처음엔 여기가 에덴동산인가 하였으나 하루가 지나니 심심해서 못살겠더라고 친구는 고개를 저었다. “구경할 만한 비키니 여인들도 없고 같이 술 마실 친구도 없고… 도무지 사람 그림자가 없다는 게 어찌나 쓸쓸하고 한심하던지….” 그는 다시 그 집, 그 직장의 쳇바퀴로 돌아와 열심히 살아간다.

이름난 관광지에 싫증난 사람들을 위해 ‘안 알려진 곳’ 만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여행사들이 성업 중이다. 인디아 북동쪽 몬순지대라든지 콜롬비아의 비경 타타코아 사막,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남극 크루즈, 히말라야의 숨겨진 마을 등 일반 비행기회사 루트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는 곳들을 잘도 골라내어 떠들썩하지 않은 여행을 안내한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은 그린랜드 일루어삿의 북극 호텔이다. 24시간 해가 머리 위에 떠 있는 여름도 좋고 캄캄한 겨울도 좋겠다. 가까이 가려면 알래스카의 이글루 마을을 찾으라고 친구가 귀띔을 한다. “어둠이 짙어지면 말이야, 모두들 이글루 안에 들어가서 나올 생각을 안 하지. 거기서 리커 마켓을 하는 사람이 있어. 복잡한 뉴욕이 싫어서 어느날 여기를 찾았다가 눌러앉았는데 하루 종일 얼음벽을 쳐다보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그리 좋을 수가 없대. 가끔씩 손님이 술을 사러 온다나. 온몸을 곰털로 감싼 에스키모가 눈신발을 끌고 어그적 어그적 들어와서 술 한 병을 사들고 오던 길로 돌아서 사라져간다는 거야. 그는 자기가 택한 삶을 즐긴다 하더군.”

아프리카 마사이 부족 의료봉사를 하고 돌아오던 길에 잠깐 들른 사파리 구역 내의 마사이 호텔도 도시인의 억눌린 욕구를 매혹시킨다. 활주로도 없이 맨흙에 랜딩을 한 경비행기에서 내려 저만치 대기 중인 지프차로 옮겨 타고 또 한두 시간 들어간 곳, 거기 초원지대에 어울릴 만한 원시적 돔형의 방갈로가 있다. 맹수의 공격은 피하되 땅에 가깝고 숲에 친화된 형태의 흙집. 지프차의 시동이 꺼진 직후 갑작스레 몰려든 것은 두 귀를 먹먹하게 하는 완벽한 적막의 소리, 사운드 오브 사일런스였다. 거기 살고 싶었다.

뉴욕타임스 기자 출신의 에릭 와이너가 쓴 ‘행복의 지도’는 ‘다른 나라에 가서 살면 행복해질까?’ 라는 질문을 가지고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느낀 이야기들이다. 스위스, 부탄, 카타르, 몰도바….

한국 MBC에서도 같은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 방영한 적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곳’이 좋아 거기 눌러 살게 된 한국인 몇 분이 소개되었다. 신들의 처소라 불리는 히말라야 라다크 지역의 유일한 한인여성, 남태평양의 작은 섬 키리바시로 이주한 한인 가족, 꿈꾸던 홍해를 찾아 삶의 터전을 옮긴 젊은이….

그들은 모두 무공해 오렌지꽃 같은 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행복은 물질이 아니라 관계에 있다는 모범답이 ‘행복의 지도’를 따라간 이들의 웃음 속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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