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대통령과 박수

2012-07-0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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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상하원 합동연설을 했던 2009년 2월24일. 대통령에 대한 기립박수가 미 의회의 오랜 전통이긴 하지만 이날 오바마 대통령은 무려 60차례가 넘는 기립박수를 받았다. 연설을 이어가기 힘들 정도로 쏟아진 박수로 오바마 대통령은 한 시간을 넘기고서야 연설을 마칠 수 있었다.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 속에 등장한 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대한 미국민의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연설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 2008년 취임 처음으로 국회에서 행한 18대 국회 개원연설 중 이 대통령은 28차례 박수세례를 받았다. 물론 한나라당 의원들만의 반쪽 박수이긴 했지만 시작하는 대통령의 성공을 기원하는 국민들의 염원이 담긴 박수였을 것이다.
28차례 박수는 1988년 대통령의 국회 개원 연설 관례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것으로 이 대통령은 한국 국회 개원 연설에서 최다 박수를 받은 기록 보유자가 됐다.

이 대통령은 미국 의회에서도 박수 기록을 가지고 있다. 숱한 우려곡절을 겪었던 한미FTA가 한미 양국에서 비준을 받은 뒤 미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은 2011년 10월14일 미 의회에서 40여분간 상하원 합동연설을 하면서 45차례의 박수를 받았다. 45회 박수는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미 의회에서 연설한 국가원수들 중 최다 기록. 며칠 뒤 청중동원 의혹이 불거져 빛이 바래기는 했지만 어찌하든 이 대통령은 한미 양국 의회에서 2개의 최다 박수 기록을 가진 유일한 대통령인 셈.


한국과 미국에서 최다 박수 기록을 보유한 이 대통령이 며칠 전 또 다시 박수로 기록을 세웠다. 아쉽게도 이번엔 최다가 아닌 최소 기록이다.

2008년 18대 개원식 이후 단 한 차례도 국회를 찾은 적이 없던 이 대통령이 지난 2일 4년 만에 처음으로 국회를 찾아 19대 개원 연설을 했다. 20여분 간 계속된 이날 연설에서 이 대통령은 4년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대접을 받았다. 여당인 새누리당에서 조차 박수치는 의원이 한 사람도 없어 이 대통령은 이날 단 한차례의 박수도 받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박수를 받지 못한 적은 있지만 4년 임기 시작하는 국회의 개원 연설에서 중간 박수를 받지 못한 대통령은 이 대통령이 처음이었다. 또 하나의 박수 기록이다. 연설 도중 단 한 차례의 박수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고요한 정적 속에 이대통령은 연설을 마쳐야했다.

취임 직후 28차례의 박수를 받았던 이 대통령의 처지가 4년이 흐른 지금 역전돼 있음을 보여준다. ‘상왕’ 소리를 듣던 형님의 비리 의혹이 터지고, 내곡동 사저 특검이 가동되고 있는데다 이번엔 밀실에서 체결하려다 들통이 난 한일군사정보협정 파문까지 이 대통령의 주변은 온통 지뢰밭이다.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그보다 떠날 때 박수를 받을 수 있어야 성공한 대통령이다. 안타깝게도 남은 시간이 그리 많지 않다.


김상목 /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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