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국 헌법의 정신

2012-07-03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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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225년 전인 1787년 7월 2일 미 연방 정부는 태어나기도 전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정부의 기본 틀이 될 헌법 초안을 만들던 대의원들이 연방 의회를 어떻게 만들 것이냐를 놓고 팽팽히 맞섰기 때문이다.

버지니아 등 인구가 많은 주들은 당연히 의석 배분을 인구 비례로 하길 원했다. 반면 델라웨어 등 작은 주들은 인구와 관계없이 1주 1표 시스템을 고집했다. 인구 비례로 의석을 정할 경우 작은 주들은 큰 주에 묻혀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없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큰 주 위주의 버지니아 안과 작은 주 위주의 뉴저지 안이 대립하면서 새 헌법 마련이 무산되려는 시점에 극적인 타협안이 나왔다. ‘코네티컷 타협안’이라고 불리는 이 안은 연방 하원은 인구 비례로 하되 상원은 인구에 관계없이 1주 1표의 원칙을 살렸다.
대다수 주가 이 안에 찬성하면서 사산 위기에 처했던 연방 헌법은 가까스로 살아났다.
연방 헌법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이같은 타협의 정신이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특징은 권력에 대한 불신이다. 멀리 떨어진 영국 정부의 독단적 식민 정책에 신물이 나 독립 전쟁을 일으킨 미국의 창업자들은 연방 정부의 권력을 최소화하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선 연방 정부를 입법, 행정, 사법 3부로 분리하고 특히 중요한 입법부는 상하 양원으로 해 서로 견제하게 했다. 거기다 나중에 ‘권리 장전’으로 불리는 수정 헌법 10개 조항을 추가, 언론의 자유 등 인간의 기본권을 정부가 침해하지 못하게 했다.
이런 헌법 초안자들의 생각은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구식 사고방식으로 여겨지게 됐다. 헌법을 고쳐 연방 정부가 직접 세금을 개인에게 부과할 수 있게 하는 등 정부의 권한이 확대됐다. 그러나 이보다 연방 정부의 성격을 변화시킨 것은 법 조항의 확대 해석을 통해서다. 연방 헌법은 연방 정부가 헌법에 ‘명시된 권한’(enumerated powers)만을 가지며 명시되지 않은 권한은 “주 정부나 국민들에 있다”고 밝힘으로써 연방 정부의 권한을 크게 제한하고 있다.


그럼에도 연방 정부 권한 확대를 원했던 사람들은 연방 정부가 갖고 있는 기존 권한을 확대 해석함으로써 이를 이룩했다. 그중 널리 애용된 것이 연방 의회가 “상업 활동을 규제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사람이 먹고 살고자 하는 활동 치고 상행위가 아닌 것이 없기 때문에 여기 걸면 모든 게 걸리게 돼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일부의 위헌 우려를 무릅쓰고 전국민 의료 보험제를 강행한 것도 의료 보험도 상행위이기 때문에 정부가 보험 가입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연방 대법원은 지난 주 예상을 깨고 의료 개혁법의 핵심 조항인 보험 가입 강제 조항이 합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그 이유는 보험 가입이 상행위이기 때문에 규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가입하지 않은 사람에게 물리는 벌금은 세금이며 연방 의회는 세금을 매길 권한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판결문을 쓴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쏟아지는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고 있다. 찬사는 주로 리버럴 진영에서 나오지만 보수 쪽에서도 지금까지 ‘상행위’ 조항을 확대해석해 권력을 남용해 온 관행에 제동을 걸었다며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보수 일각에서는 ‘상행위’ 확대 해석에 제동을 걸었을지는 모르지만 ‘세금’이란 이름으로 벌과금을 매김으로써 개인의 활동에 정부가 마음대로 관여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비판의 소리가 나오고 있다. 건강에 좋은 브로콜리를 먹지 않거나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벌과금을 매길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이렇게까지 개인의 일상에 정부가 개입하도록 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번 판결로 오바마케어는 살아남았지만 공화당은 올 가을 선거에서 이겨 이를 폐지하겠다고 벼르고 있어 예정대로 시행될지는 미지수다. 거기다 예산을 다루는 하원을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한 돈을 대주지 않으면 사실상 제대로 시행이 어렵다. 전국민 의료 보험 시행까지는 아직도 갈 길이 먼 것 같다.


<민경훈/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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