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홀로 있어도 삼가라

2012-07-02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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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속의 부처

▶ 박재욱 <나란타 불교아카데미 법사>

다들 그랬다. 스님께 가까이 가면 베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렵다고들 했다. 사실 깐깐스런 겉보매와는 달리 웅숭깊은 당신의 속 살림을, 무시로 붓을 빌려 따뜻한 서정으로 풀어내고는 했지만, 생전의 법정 스님을 두고 속인들이 하나같이 하는 말이다. 그토록 스님은 스스로에게 엄격하여 자신의 허튼 수작 하나, 한 치의 배반도 용납하지 않았다. 또한 스님과 마주한 사람들은 그 분의 가만 하나 얼핏 설핏 스치는 형형한 눈의 정기에, 스르르 마음을 여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암 투병 중인 이해인 수녀는, ‘국민 할배’ 김수환 추기경을 가지를 넓게 펴고 세상을 품는 느티나무로, 종교의 벽을 넘어 30년 넘게 허물없는 우정과 정신적 교감을 나누었던 법정 스님을, 절벽 위에서 청청함을 잃지 않고 꼿꼿하게 서 있는 한 그루 소나무로 비유한 적이 있었다. 이미 고인이 되신 두 분 성직자의 맑고 아름다운 삶과 그 품성에 대한 비유가 그럴 수 없이 절묘하다.

아무튼 스님은 세간에서든 산속에서 홀로 독살림을 하실 때건, 출가자의 본분을 잡도리하기 위해 언제나 자신을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 두셨다.


어느 해 한 여름, 스님을 가까이서 모셨던 R시인이 오대산 ‘쯔데기골’에 있는 스님의 오두막을, 어쩌다 햇볕이 쨍쨍한 한 낮에 들르게 되었는데, 뜰 한 모퉁이에서 땀에 흠뻑 젖은 스님이 장작을 패고 있었다고 한다. 시인의 황당해 하는 모습에 스님께서는 “자꾸만 졸음이 와서 잠을 쫒느라”고 하면서 겸연쩍어 하셨다고 한다.

공자께서는 신독(愼獨)을 말씀하셨다. 신독이란 마음과 행실을 닦는 수신의 의미로 ‘홀로 있어도 삼가라’ 즉, 자기 홀로 있을 때라도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말고 조심하라는 가르침이며 한편, 소인은 한가로이 있으면 아무거나 못하는 짓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니, ‘홀로 있음을 삼가라’는 뜻으로도 풀이한다. 나아가, 홀로 다니거나 서 있어도 자기 그림자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며, ‘홀로 잘 때에도 이불에게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안팎으로 크나 작으나 매사에 ‘삼가’기도 쉽지 않은데, 더욱이 ‘홀로’ 일 때마저 삼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소한 것에라도 한 번 흐트러지고 무너지면 그 다음은 쉬워지는 법이기에, 속인과 출가자를 막론하고 가장 어렵고 경계해야 할 때가 ‘홀로’ 있을 때일 것이다.

특히 사람들은 위의와 기품을 갖춘 출가자들에게만 진심으로 합장한다. 그 위의는 먼저 계율준수라는 지계에서 발현되며, 신독은 그 지계의 토대이고 처음이자 마지막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도(길)를 닦아 자신을 구원하고 무지한 중생들을 제도하겠다는 출/재가수행자가, 남이 보든 말든 자신의 눈의 길, 귀와 코와 혀의 길, 자신의 몸과 생각의 길 하나 제대로 닦아 조복 받지 못한다면, 무슨 길을 닦고 누구를 제도한다 하겠는가.

홀로 오두막 살림을 하면서 한 송이 들꽃, 지저귀는 산새와 물소리, 솔숲을 스치는 바람소리에게마저, 겸허하고 삼가신 스님의 맑은 향기가 한층 그리워지는 때이기도 하다. 생전에 스님이 이해인 수녀에게 부친 어느 편지 중의 한 대목이다.

“산에는 해질녘에 달맞이꽃이 피기 시작합니다. 참으로 겸손한 꽃입니다. 갓 피어난 꽃 앞에 서기가 조심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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