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마트폰

2012-05-02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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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교하는 삶

의사라면 누구나 환자들이 예약한 시간을 맞춰 주려고 최선을 다할 것이다. 그러나 가끔 앞에 온 환자의 치료가 지연되면서 부득이 다음 환자를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생긴다.

고맙게도 환자들이 잘 이해해주어서 큰 문제없이 지내왔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에 대기실에 직접 나가보면 예전 풍경과는 많이 달라진 것을 본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테이블에 놓인 여성지나 골프 매거진, 한국 일간지 등이 인기이더니(필요한 페이지를 찢어가는 사람도 있다) 요즘은 거의가 각자 손 안에 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아기 보는 비디오’라는 DVD처럼 스마트폰을 ‘환자 보는 전화기’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다.

스마트폰, 정말 스마트하기도 하지!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듣고 이메일 답장을 하고 온라인 게임을 한다. 지구 끝 어디라도 문자를 하고 카카오톡을 하고 네이버 라인을 하고 스카이프와 탱고를 하고 자기 사업장 내부의 게으름 피는 직원을 비디오로 감시한다. 치아 화이트닝(미백)을 받고난 뒤 유려해진 자기 입 안을 카메라로 찍어서 남편에게 보내고 프리웨이 교통을 살피고, 믿지 못할 남자친구(오빠라던가?)가 자기 몰래 어디를 돌아다니는지도 추적한다. 4~5인치 작은 스크린 안에, 내가 사는 세상이 컴팩 사이즈로 재현되고 꿈 속 환상이 실재하는 공간으로 확장된다.


스마트폰, 신기하기도 하지! 이제 ‘심심하다’는 단어는 영영 사라질는지도 모른다. 스크린에 취해서 심심할 새가 없다. 라디오도 TV도 전세계 어느 나라 방송이든 클릭만 하면 다 나온다. 에티오피아 현지 방송의 암하리크 언어도 들어보고 아랍 에미레이트 가수도 구경한다.
대기실에 앉아 스마트폰을 가지고 놀던 환자의 이름을 부르면 잠시 ‘정지’된 표정을 볼 수 있다. 스크린 세상이 현실 세계로 전환되는, 순간적 공황상태가 그대로 얼굴에 나타난다. 그 표정의 이름은 멍! 이다. 짧은 거리의 물체에 집중하던 눈이 갑자기 그보다 떨어진 거리의 간호사 얼굴을 보려니 초점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두 눈을 몇 번 깜박거리며 일어난다.

스마트폰, 고맙기도 하지! 대기실 의자에 앉아 이제 곧 보게 될 의사의 평을 조회하기 위해 살짝 옐프(yelp) 사이트를 들여다볼 수도 있다. 미처 끝내지 못한 숙제가 있을 때는 손가락 끝 클릭 안에 해답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 뿐 아니라 남이 이미 일목요연하게 올려놓은 답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골라서 카피-페이스트 하면 그뿐이다. 고리타분하게 책 먼지 나는 도서관엘 왜 간단 말인가! 

현대인들은 자기에게 필요한 정보를 얻고 기억할 때, 정보 자체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그 정보를 나중에 어디 가서 찾으면 되는지 그 경로를 기억하려는 경향이 압도적이라고 최근 리서치가 밝히고 있다. 그러니 스마트폰은 고맙다. 뭣 하러 복잡한 머리를 애써 움직인단 말인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아니 요즘은 터치폰이니 손끝을 부드럽게 대기만 하면, “옙!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하면서 램프 의 요정 지니처럼 친절하게 해결해 준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천천히 하는 일을 못견뎌한다. 알레그로-비바체. 점점 더 빠르게 살아가고 즉답형이 아닌 느림을 짜증낸다. 치아 임플랜트를 위해 필요로 하는 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힘들다. 모두가 더 빨라진 4G 스마트폰 중독 환자가 되었나? 광대무변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우리들의 빨리 빨리!가 아무래도 좀 웃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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