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후회는 앞서지 않는다

2012-04-0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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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 속의 부처

얼마만인가. 숙연하기까지 했던 의식이 이제 막 끝났다. 살짝 벌려본 입술은 금세라도 터질 듯한 욕망을 머금고, 반쯤 수줍게 몸을 연 한 송이 핏빛 장미꽃이다. 얼핏, 옅은 사향냄새 같은 향내가 촉촉한 입술 언저리를 맴돈다.

그 의식은,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익숙해져버린 압박과 설움과 질곡에서 해방되려는 안간 몸짓이다. 그것은 오랜 세월 곰삭은 조용한 분노의 표출로 ‘소리 없는 아우성’이며, 막연한 그리움이고 일탈이란 반동의 신호이다. 또한 그 의식은 일탈의 실행을 위한 단호한 결의이며 비장한 혁명의 서곡이다.

‘내일이면 잊으리/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별이 지고 이 밤도 가고나면, 정녕 당신을 잊고자 혁명가(?)는 이다지 다짐하고 절규한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보다 짧은 사랑아/ 마지막 선물 잊어 주리라/ 립스틱 짙게 바르고.’
농염한 달빛의 교태가 봄바람 속의 벚꽃처럼 배덕의 밤거리 위로 흩어진다. 휘황한 네온 불빛아래 모여든 부나비들이 끈적끈적한 색서폰 소리에 흐물거린다. 데포르마시옹의 군상들.
그래, 나 이제 잊어 주리라. 울어라 색서폰아! 이 밤이 다 타도록. 장삼이사면 어떻고 낯설면 어떤가. ‘파란 등불 아래 빨간 등불 아래/ 춤추는 댄스의 순정/ 그대는 몰라 그대는 몰라/ 울어라 색서폰아‘.’
물고 있던 일말의 회한과 무람마저 무너지고 음습하고 불온한 해방감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퍼져나간다.


은폐됐던 기이한 관능이 머리를 들고 뱀이 허물을 벗듯 서서히 꿈틀대는 혼몽 속에서, 땀에 젖은 비릿한 밤은 그렇게 익어갔다.
어디에서였던가? 이도령과 춘향의 운우지정을 묘사한 그 기막힌 은유가, 떨쳐낼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왔다. 이미, 휘모리와 진양조 장단을 오가는 변주에 균형 잃은 맥동은 바쁘다.
‘말발굽소리 빨라지면 가야금소리 빨라지고/ 말발굽소리 느려지면 가야금소리 느려진다/ 말발굽. ‘
그때다. 때맞춰 전화벨 소리가 연이어 악을 쓴다. 꿈결에 받을까 말까 엉거주춤하던 그녀가 마지못해 전화기를 끌어당긴다. “당신, 전화 받지 않고 뭐하고 있었소!” 남편의 볼멘 호통이다. 전화기 저편에서 뭐라고 구시렁대는 소리가 아득하다. 그녀의 억울한 심기가 밴 푸념이 이어진다. “이 화상은 그래, 하는 짓마다 이쁜 짓만 골라 해요.”

일상에서 마음 한 구석에 동통이 쌓이거나 무엇에 허기질 때, 누구나 한 번쯤 일탈을 꿈꾼다. 그러나 고루하고 곤고한 삶을 치유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창조적이고 참신한 일탈이야 권장되어 마땅하다.
하지만, 어떤 형태의 일탈이든 당당할 수 없는 일탈은 일생의 치부가 되고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며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도 만든다.
통상 느끼는 대부분의 괴로움은 ‘언제나’ 충족되지 않은 기대치와 현실과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한다.

불교는 그 달성 요원한 기대치에 대한 허망한 집착을 놓아 버리는 연습, 즉 지금 있는 것, 가진 것에도 감사와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의 여유와 힘을 길러야 한다고 가르친다. 막론하고 세상의 임들아!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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