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금 잘 보이세요?

2012-03-2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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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한 나 <남가주광염교회 사모>

밤새 내리던 봄비가 잠자던 나무들을 흔들어 깨웠다. 나뭇잎 하나 없이 말라 있던 나뭇가지마다 아기 살결처럼 보드라운 연초록잎과 손톱만한 작은 꽃잎들이 서로 얼굴을 내밀고 손을 흔든다.

어려운 경제도 아랑곳 않고 씩씩하게 봄노래를 합창하는 가로수들이 왜 그리 고맙고 사랑스러운지. 이른 아침부터 학교 가는 아이들을 싣고 달리다가 어머머~ 감탄사가 쏟아져 나온다.
‘예나야, 예일아 저 꽃잎 좀 봐… 너무 신기하지 않니?’ 한창 사춘기인 막내 딸들보다 더 흥분하는 엄마를 향해 ‘엄마 봄이니까 그렇지.’ 너무 당연한 얼굴로 엄마를 쳐다보며 웃는다.
늘상 누렸던 봄이건만 새 생명의 힘찬 노랫소리는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크게 들려온다.

‘봄’이란 단어가 ‘보다’의 명사형이라서 그런가. 봄엔 정말 눈이 호사를 누린다. 앞에만 달린 눈인데 그 작은 눈으로 온 세상의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커다란 복이다.
시력이 나빠서 초등학교 때부터 안경을 썼다. 지금도 처음 안경을 썼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온 세상이 희미했었는데 순식간에 모든 것이 명확하게 보이는 순간, 얼마나 기뻤는지 펄쩍 뛰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었다. ‘평생토록 하나님의 얼굴도 이렇게 선명하게 볼 수 있게 도와주세요!’


이제 오십을 바라보면서 난시도 생기고 돋보기까지 써야 하는 형편이지만 마음에 붙은 또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에 감사 찬양이 절로 나온다.
얼굴에 붙은 두 눈도 건강한 시력을 위한 노력과 관리가 필요하듯이, 심령의 눈 역시 세심한 건강관리가 필수과목이다. 눈에 좋은 영양분을 섭취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좋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아닐까.
시력이 좋다는 것은 사물을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다. 모든 사물들에겐 저마다 특별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움직이는 생명체는 물론이고 움직이지 못하는 사물들조차도 세상을 향해 외치는 소리들을 갖고 있다.

얼굴에 붙은 눈으로 그 사물의 형상을 볼 수 있지만 마음에 붙은 눈으로는 그 외치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다. 왜 그 자리에 서 있는지, 왜 그렇게 생겼는지, 상처난 얼룩과 흔적들은 더 서럽게 소리치며 보이지 않는 세월의 흔적까지 숨도 안 쉬고 말해준다.
보이는 세상을 바라보면서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세상의 이야기들이 가슴속에 메아리치며 합창을 한다.
정말 잘 살아야 한다고… 참된 시력을 회복해야 한다고… 가려서 보고, 듣고, 구별되게 살아야만 한다고…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고… 소리 없이 외치는 봄의 교향곡을 들으며 마음의 눈에 하나님의 눈물방울이 번져가고 있다.
지금 당신의 시력은 안녕하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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