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선교하는 삶 - ‘초밥왕’지로의 꿈

2012-03-21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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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에 이어 지난주 웨스트우드의 한 극장에서는 초밥왕 지로 오노의 꿈을 소재로, 데이빗 겔브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한 편이 소개되었다. 도쿄의 한 지하철 역 안에 있는 수키야바시 스시집을 운영하는 주인공 지로(87세. 촬영 당시에는 85세)는 장인정신을 소중히 여기는 일본 정부가 이미 ‘현대의 명공’으로 지정한 인물인데 세계적 최고권위의 프랑스 미슐렝 가이드 역시 쓰리 스타의 영예를 그에게 선사한 바 있다.

그의 식당에는 좌석이 10개 뿐이다. 화장실도 밖으로 나가 지하철역 안에 있는 것을 사용한다. 크레딧 카드는 사절. 메뉴판도 없다. 그날 들어온 최고의 생선만 접시 위에 오른다. 그의 스시를 맛보려면 적어도 수개월 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그는 미슐렝의 쓰리 스타 수상 소식에 이렇게 반문한다. “프랑스 사람들은 스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이 어떻게 우리를 평가한단 말인가?” 이같은 자부심을 안고 그는 기념식에 참석하였고 금세기 최고의 요리사로 꼽히는 조엘 로브숑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지로는 시즈오카에서 태어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아홉살에 친척집에 맡겨졌다. 그러나 어른들이 돈걱정 하는 소리를 엿듣고는 이튿날 집을 나가서 식당을 전전하며 온갖 험한 일을 겪었다. 25세에 한 손님의 소개로 도쿄 초밥집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다소 늦은 나이인 40세에 독립하여 지금의 스시집을 오픈한 것이다.


최고를 향한 그의 집념과 노력은 상상을 뛰어넘는다. 그는 일할 때 외에는 늘 장갑을 끼고 산다. 손님들 앞에 검버섯 핀 지저분한 손을 보이면 입맛이 떨어진다는 게 첫째 이유이고 스시맨의 최고 재산인 손바닥의 감각을 보존하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이다. 왼손잡이인 그는 왼쪽 가운데 손가락과 약지, 새끼, 세 손가락으로 스시에 들어가는 밥의 촉촉함과 끈기와 온도를 재고 그 감각으로 최고의 프로 자리를 지킨다. 무거운 물건도 들지 않고 커피 역시 혀의 감각이 둔화될까 봐 마시지 않는다. 최고의 스시를 위해 최상의 생선만 고집한다. 수산물 시장에서 그는 가장 훌륭한 투나와 새우를 알아본다. 문어는 그의 수련생들이 상에 내기 전, 45분간 마사지를 시키고, 최고의 계란말이를 위해서조차 문하생 입문 1년은 지나야 한다. 그는 완벽주의자이다. 일생동안 그는 자기가 만든 스시 피스 하나 하나가 접시 위에 오른 ‘최상의 작품’이 되도록 열정을 쏟아왔다.

겔브 감독 역시 어린 시절부터 스시에 매료되어 오랜 구상 끝에 다큐멘터리를 만들게 되었는데 권위 있는 음식평론가인 마쓰히로 야마모토의 코멘트가 많이 삽입되어 있다. ‘도쿄 시내의 스시식당 수백 곳을 이미 다녀보았으나 지로의 스시가 최고였다’는 평론가는 이어서 ‘최상의 간단함이 곧 순수함’이라고 지로의 컨셉을 확인하고 있다. 지로 역시 ‘최고가 되려면 너 자신을 바쳐라!’는 믿음을 실천한다.

LA타임스의 케네스 투란 기자는 필름 속, 지로를 가리켜 “자신을 훈련함이 불굴의 의지를 발하는 불교 수행자와 같다”고 표현한다. 나는 90년대를 강타했던 27권짜리 일본 인기만화 ‘미스터 초밥왕’을 읽고 주인공 쇼타에게 반했었다. 온갖 역경을 딛고 초밥 세계의 최고왕이 되는 어린 주인공의 의지가 치열하고 순수했다. 나이든 지금은 다시 ‘최고의 나’를 바치는 ‘지로의 꿈’에 매료된다.

비약일까? 크리스천으로서의 경건훈련이 너무 빈약하다는 나 자신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김 범 수<치과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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