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북한고아 돕기의 이유

2012-03-19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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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 순 태 <카라미션 운영위원장>

왜 부질없이 북한을 돕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 질문 속에는 동족을 도울 필요가 없다는 게 아니라, 아무리 동족이지만 북한이라는 나라의 행동거지가 도와주기에는 너무 얄밉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북한이 그만큼 우리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미움을 받도록 처신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 사정을 헤아리면서 그 질문에 답변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북한 지원단체의 심부름을 계속하여 온 사람으로서 한 번쯤은 그 질문에 분명한 대답을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말을 길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타인의 불행을 도와야 한다면, 아프리카 사람도 도와야 하고, 중남미 사람들도 도와야 하고, 아시아 빈민층도 도와야 하지만, 그러나 북한에 있는 우리 동족들을 더 마음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 동족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이 다른 나라 빈민층보다 훨씬 더 불행한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가끔 아프리카나 남미의 빈민 봉사를 다녀 온 분들의 귀국보고 영상을 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물론 TV에서도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그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있다는 것입니다. 헐벗은 아이들이라도 봉사자들과 어울려 자유스런 표정에 웃음이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의 얼굴에는 대개 웃음이 없습니다. 고아들 중에도 조금만 나이든 아이들이라면 대부분 얼굴에 웃음이 없습니다. 웃을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우리 주민들의 얼굴에 웃음이 사라지는 이유는 뼛속 깊이 자리잡은 불행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몇 가지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북한의 우리 동족들은 굶지 않아도 될 만큼 부지런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자의식을 가지고 있고, 살아갈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굶주립니다. 저는 지금 북한 정부를 비난하려는 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배고프다는 것입니다. 배고프지 않을 수 있는 사람들인데 굶어야 하는 현실이 그들을 불행하게 합니다.

다음으로는 타국가의 빈민들에 비하여 우리 북한 동족들은 여행과 거주의 자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배가 고프면 어딘가 좀 나은 곳으로 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거주지역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배가 고파도 자기가 있어야 하는 곳에서 배고파야 합니다. 중국으로 강을 건너가다 총에 맞아 죽는 동족도 있습니다. 이처럼 굶주림을 어찌해 볼도리가 없을 때 그들은 가장 불행하다고 느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우리가 잘 아는 대로 북한 동족들은 자유롭게 의사를 표시할 수가 없습니다. 할 말이 있어도 그것이 북한 사회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를 먼저 저울질해야 합니다. 불평이나 화풀이 말을 하면 반드시 책임을 지고 비판을 받게 됩니다.

더 많은 이유를 열거해야 하겠습니까? 어느 나라 빈민들이 북한 동족들처럼 어렵겠습니까? 우리 동족들은 저능하지도 않고, 무식하지도 않고, 게으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200만이 굶어 죽은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더 불행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북한 동족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같은 동족이라면 이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그 현실에서 오도 가도 못하는 부모도 없는 고아들을 어찌 외면하겠습니까? 아프리카에 가는 것보다 좀 어렵더라도 북한 동족들에게 먼저 가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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