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멀리서 보면 코미디인데…’

2012-03-05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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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랍다. 변화의 속도가 눈부시다. 어지러울 정도다. 그러나 상당히 변칙적으로 보인다. 그래서인가. 현상파악이 어렵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태평양 건너로 바라보이는 한국의 모습이다.

멀리서만 본 탓인가. 해외에 비쳐지는 한국, 그중에서도 정치판의 모습은 때로는 코미디 그대로다. 국회의원이란 사람들이 떼를 지어 미국 대사관을 찾아가 한미 FTA 폐기 으름장을 놓은 것이 그렇다.

경박스럽다. 기고만장이다. 저들만의 잔치에 우쭐대고 있다. 그러면서 눈치 보기에 바빠 사시(斜視)가 될 지경이다. 멀리서 보이는 한국 정치의 단면들이다. 그 모양새가 선거정국을 맞아 더 혼란스럽다.
도대체 어쩌다가…. 문득 한 가지 단어가 떠올려진다. ‘세계화적인 현상’이라는 단어다.


“아랍 민주화 혁명, 유로존 위기, 미국 대선정국 돌입 등 빅뉴스에 가려 한 이정표적인 뉴스가 별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세계인구가 70억을 넘었다는 뉴스다.” 한 인구학자의 지적이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단지 70억이라는 숫자가 아니다. 세계 인구의 반 정도가 24세 이하의 젊은 세대라는 사실이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방대한 젊은 층 인구집단이 형성되기는 처음으로, 이는 축복과 저주 양면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다.

젊은 에너지를 효과적으로 관리해 생산성을 높이고 소득 증대를 가져올 때 방대한 젊은 인구는 발전의 원동력이 된다. 그 자체로 축복이다. 그 반대의 경우 젊은 세대, 특히 과다한 젊은 남성인구는 시한폭탄과 같은 존재가 된다.

문제는 정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아시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지역에서 특히 젊은 인구 과다증상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분노한 젊은이들의 에너지가 어떤 방향으로, 또 어떤 모습으로 폭발할까. 이것이 관심의 초점인 것이다.

‘점령하라(Occupy)’ ‘잡았다(We got him)’- 2011년을 진동케 한 젊은이들의 구호다. 간결하지만 선동적이다. 분노한 젊은이들의 그 감성적 외침과 함께 전 세계는 이미 격동의 한 해를 보냈던 것이다.

수 십 년 독재의 아성이 하나 둘 무너져 내렸다. 그 외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아랍의 민주화 혁명이다. ‘점령하라’의 그 외침은 미국으로, 유럽으로, 그리고 일본으로도 번져나갔다. 선거혁명의 열기가 휩쓸고 있는 것이다.

분노한 젊은이들의 외침은 이런 면에서 보편적인, 세계화적인 현상이다. 그 외침이 한국에서는 야유와 조롱과 형편없는 욕설로 바뀌었다. ‘쫄지마, 씨바!’가 바로 그 대명사다.


‘나꼼수’라고 했나. 인터넷을 통해 오디오나 비디오를 내려 받아 즐기는 맞춤형 개인 미디어인 일종의 팟캐스트(Podcast·Ipod와 Broadcast의 합성어)다. 이를 통해 욕을 해댄다. 대통령은 ‘가카새끼’가 된다. 상상조차 힘든 비속어를 토해가며 낄낄거린다. 도덕과 지성은 안중에도 없다. 욕설의 하수구라고 할까. 그런 언어를 구사하면서 권력과 권위를 마구 난도질한다.

좌절감에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 젊은이들에게 한순간이나마 카타르시스를 준다. 양아치수준으로 불의를 자행하는 사회지도층의 악한 의도를 똑 같이 양아치 수준의 언어로 공격해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을 준다는 데에서. 이런 점에서 ‘나꼼수는 순기능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나꼼수’에 젊은이들이 환호한다. 접속자 수가 수백만에 이른 것이다. 그 저질의 위세에 정치인들이 놀랐다. 미래를 향한 정치판을 연다는 미명 하에, ‘젊은 세대를 향한 기대’를 언급하면서 정치권은 마침내 ‘나꼼수’에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한 것이다.

‘나꼼수’ 멤버들은 그들대로 우쭐대기 시작했다. 정치를, 권위를 욕해대며 낄낄거리던 해적방송이 산 권력으로 우뚝 서고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는 생각이 들면서. 여기서부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야당인 민주통합당 의원들에게 ‘나꼼수’ 멤버인 정봉주는 사표(師表)가 됐다. 걸핏하면 옥중에 있는 그에게 우르르 달려가 ‘정봉주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이다.

그 연장선상에서였나. 100여명의 야당의원과 총선 예비후보들이 미 대사관 앞에 몰려든 것은. 총선에서 승리하면 한미 FTA 재협상을 폐기할 것이라는 으름장을 놓으면서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까지 전달한 것이다.

마치 어디서 ‘지령’이라도 받은 것 같다. 한미 FTA만이 살길이라고 외쳐대던 민주당이었다. 말 바꾸기와 함께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그 모습이 해방정국 때 반탁에서 하루아침 찬탁으로 돌아선 좌파의 모습을 방불케 해서 하는 말이다.

반전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저질정치에, 경망스럽기 짝이 없는 야당에 민심이 돌아설 기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상승세를 타던 민주통합당 지지도가 허약한 여당에 밀리기 시작한 것이다.

멀리서 보이는 그 모습 역시 영락없는 코미디다. 한 치 앞을 못 내다보고 기고만장해 우쭐대다가 당황해하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인생은 그러나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경망스럽기 짝이 없는 정치, ‘나꼼수’란 저질 해적방송에 놀아나는 정치, 그 정치에 갇힌 한국 사회, 그 자체가 비극이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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