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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칼럼/ 시험을 위한 ‘읽기 기술’ vs. 창의력을 위한 ‘읽기 예술’

2012-02-06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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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김(C2 Education 원장)

대부분의 표준 고사에는 ‘읽기’가 포함돼 있다. 전형적인 ‘읽기’ 시험은 학생들에게 짧은 글 혹은 긴 글의 일부분을 읽게 한 후 주어진 지문에 대한 몇 가지의 객관식 문제를 풀게 한다. 표면적으로 이러한 방식은 아이들의 ‘읽기’ 실력을 측정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읽기’ 시험이 우리 아이들의 온전한 책 읽기에 방해가 된다면 어떻겠는가?

최근 뉴욕타임즈는 표준 고사가 아이들의 온전한 책 읽기에 치명적이라는 주장을 편 학부모들의 이야기를 실었다. 한 해를 보내는 송년 파티에서 아들이 숙제로 가져 온 읽기 시험을 재미삼아 풀어 보자고 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다. 4명 중 3명의 부모가 박사 학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아주 당연히 시험을 통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고학력의 부모들은 예상과 달리 첫 번째 문제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시험의 첫 부분은 짧은 이야기를 읽고 6개의 객관식 문제를 푸는 것이었다. 누나 호랑이 티키와 남동생 호랑이 미스타에 관한 짧고 간단한 지문이었다. 다음은 지문의 주요 내용이다.


{티키는 남동생 미스타를 바라보았다. ‘너는 아직 말을 잘못하는구나…’라고 시작되는 이야기에서 티키는 아직 말을 배우지 못한 미스타 때문에 곤란을 겪게 된다. 그럼에도 동생에게 벌레를 찾게 하고 나무껍질을 벗기게 하는 등 동생을 재미있게 해주려고 노력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티키는 미스타가 말은 못하지만 그런 일에 있어서는 자신보다 더 나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첫 번째 질문은 ‘이 이야기는 무엇에 관한 이야기입니까?’였고 네 가지 선택이 주어졌다. ⓐ호랑이들이 좋아하는 먹이 ⓑ호랑이들이 나무껍질을 벗기는 방법 ⓒ두 마리 호랑이가 어떻게 서로 잘 지내게 되어 갔는가 ⓓ호랑이들이 하기 좋아하는 것

이 질문에 대해 심도 있는 문학적 토론이 진행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답을 고를 수가 없었던 부모 가운데 한 사람이 ⓑ가 답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호랑이들이 나무껍질을 벗기는 방법‘이 주어진 이야기를 사건 지향적으로 요약했을 때 가장 적합한 요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면 또 다른 사람은 두 마리 호랑이간의 상호 작용을 가장 잘 요약한 ⓒ가 정답이라고 주장했다. 또 다른 사람은 이 이야기는 형제 자매간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며 ‘ⓔ위의 어떤 것도 정답이 아님’이라는 선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은 주어진 선택들마다 나름 이야기의 일부분을 반영하고 있다며 ‘ⓕ위의 모두가 정답’ 이라는 선택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간단하고 진부한 이야기조차 단 하나의 주제로 일반화 시킬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어린 학생들에게 이와 같은 시험을 보게 하는 것은 두 가지 잘못을 유발한다. 첫째는 이렇게 진부하고 재미없는 지문을 반복적으로 읽게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학생들이 기쁨으로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미리 정해진 바보 같은 답을 찾기 위해 기계적으로 글을 읽게 훈련한다는 점이다. 물론 정답은 ‘ⓒ두 마리 호랑이가 어떻게 서로 잘 지내게 되어 갔는가’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쉽게 정답을 고를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미 이러한 식의 표준 고사에 아주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은 대부분의 표준 고사들이 학생들의 실제 학업 성취도를 평가하기보다는 학생들의 시험을 치르는 기술에 의해 높은 점수를 기록하게 한다는 점이다. 특히 읽기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읽기는 예술이다. 책 읽기는 쓰인 글자를 문자 그대로 읽으면서 정보 파악을 위해 단순하게 접근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전한 책 읽기는 행간의 의미를 찾아내며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을 통해 이뤄진다. 책 안에 숨겨진 다양하고 심오한 의미를 찾아내면서 읽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는 단순한 문자 해독의 작업이 아닌 예술과 같은 창의적인 작업이다. 이렇게 창의적으로 예술가처럼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책 읽기는 흥미로운 작업이고 같은 책이라도 읽을 때마다 다른 목소리를 내는 흥미진진한 모험이 된다.

표준 고사라는 틀에 박힌 방식으로 읽기를 가르치게 되면 아이들은 창의적으로 책 읽는 방법을 배우지 못하게 된다. 주제와 주요 등장인물, 작가의 의도 등을 판에 박힌 관점으로 정보를 해독해 나가는 작업으로 읽기 실력을 키우게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만 읽기 훈련을 받게 되면 아이들은 책 읽기에 흥미를 느낄 수 없게 되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도 키울 수 없게 된다. 또한 동일한 정보에 대해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 능력도 키울 수 없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표준 고사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표준 고사 성적은
우리 아이들의 평생 진로에 항상 따라 다니고 우리 아이들을 평가하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에게 표준 고사에서 원하는 방식의 ‘읽기 기술’도 가르쳐야 한다.

하지만 이와 더불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시험을 위한 읽기가 아닌 창의적이고 흥미로운 예술 작업과 같은 읽기에 대해서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내용을 읽고 다른 관점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른 목소리로 이야기를 재해석하고 서로 나눔으로 아이들은 온전한 읽기의 재미와 기술, 그리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시험을 위한 ‘읽기 기술’과 창의력을 위한 ‘읽기 예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아이들의 읽기 지도를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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