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 해, 용띠의 해에

2012-01-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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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태(시인)
어두움을 거두어 가는 전기를 휴식 없이 나르는 전기 줄이나, 산골 한 지점으로부터 시작한 작은 물방울이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어 들판을 가로 지르고 산을 돌아 마지막 지점까지 묵묵히 가는 그 가느다란 염원, 그 염원의 발을 빌려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까지 우리는 묵묵히 땀 흘리며 왔다. 누가 알까? 이루었던 이루지 못하였던 가슴 안에 술렁이던 천 개의 바람과 만개의 간절이 지나간 일년이란 시간 속에 그림자를 버리지 않고 있었음을 그 누가 알까?

과정을 거친 마지막 시간에 가서는 성공과 실패를 상관하지 않고 아름다워지는 노을빛처럼 나는 한 해의 마지막 달인 12월에 이루었던 이루지 못하였던 지나간 모든 명확한 것과 새로 오려는 안개 같은 것을 등에 지고 말없이 서 있다. 지나간 것은 모두 아쉽지만 홀가분하다. 그렇다. 12월엔 천개의 다른 눈동자가 모두 한 가지 마음으로 하나의 눈동자가 되어 서 있다. 생각하기조차 두렵고 싫은 45년 전 1966년, 나는 전쟁이 가장 심했던 월남 전쟁터에 있었다. 밤
이 되면 수백의 조명탄으로 밤을 밝히는 사이공의 시내와 탄산누트 비행장, 그리고 약 100리 밖에 있는 롱빈 보충대와 비엔호아 비행장, 낮에는 멀쩡한 일반시민으로 미군부대에 현지 채용인으로 일을 하다가도 밤이 되면 베트공으로 변신하여 자기가 일을 하는 미군부대를 야습하는 험악한 전쟁터에 있었다.

전쟁으로 휩싸인 월남 사회에는 인간의 정서란 어디로 갔는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자기들도 누가 누구고 누가 무슨 신분인지 모르는 사회에는 정서대신 의심만 만연했다. 불란서 식민지로 99년을 지낸 월남사람들은 일본 군국주의 통치하에서 식민지 생활로 36년을 보내면서 끊어지지 않는 동아줄이 된 한국 사람들의 가족 관계보다도 가족관계가 더 질기고 우의가 깊다. 그런 월남 사람들에게 전쟁이 참혹한 선물로 안겨 준 것은 잃어버린 인간과 가정정서의 자리에 의심과 핑계와 불법을 합법화 할 줄 아는 변명뿐이었다. 변명이란 진실을 외면하려는 용기 없는 행위다. 살아남기만을 바라는 그런 사회의 인간관계에는 억지의 논리가 만연하면서 참 인간의 본질이 되어주는 고귀한 정서의 값을 동댕이친다.

국내에서는 전쟁을 치루지 않는 미국 사회에서 불의에 무릎을 꿇으면서도 부끄러움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먹고 사는 데에는 최소한의 보장책이 마련되어 있는 미국에서 돈벌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 뒷전에서 이간질을 일삼는 심심한 사람들이 우리가 땀을 흘리며 사는 뉴욕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정서의 생산목표는 평화고 평화는 의를 바탕으로 한다. 조직은 조직대로, 교회는 교회대로, 단체는 단체대로 제대로 굴러가지 못하고 평화대신 불협화음이 튕겨져 나오는 까닭은 논리를 앞세워 정서를 무시하기 때문이다. 가시를 단 꽃 중에는 분홍 바늘꽃이 있다. 바늘이 부드럽고 무른 분홍 바늘꽃, 아무리 찔러도 눈물이나 아픔이나 피를 흘리게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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