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Working Poor

2012-01-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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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부국장 대우/경제팀장)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최소한 일한만큼은 살 수 있다는 한인들의 자부심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한국이 그리워도, 미국에서 속상할 때가 있어도, 그래도 미국에서는 노력한 만큼의 대가가 돌아오는 상식이 통한다고 믿었던 자부심 말이다.장기화되고 있는 불경기로 열심히 일해도 사는 것이 쉽지 않다고 푸념하는 것이다.그래서 그런지 요즘 한국이나 미국에서 ‘워킹 푸어’(Working Poor)나 ‘하우스 푸어’라는 말이 실감나게 들린다.

‘워킹 푸어’는 ‘일하는 빈곤층’이라는 뜻이다. 열심히 일을 해도 저축을 하기 빠듯할 정도로 형편이 나아지지 않는 계층을 말한다. 이들은 갑작스런 병이나 실직 등으로 한순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에서는 최근 열심히 일해도 별다른 희망이 안보인다는 점에서 이같은 표현이 많이 사용되
고 있다. 지난 2010년 한국의 ‘워킹 푸어’는 전체 근로가구의 71%에 달한다고 한국노동연구원이 분석했다.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가구가 많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같은 구조적인 문제가 악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말하는 부자 감세, 고환율과 같은 재벌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이 이같은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분석이 일반적이다. 기업의 이윤 확대가 임금상승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기업들은 임금 삭감과 구조조정이라는 비용 절감을 통해 회생했지만 직원들은 그 희생양이 돼, 더욱 가난해졌다.
이같은 경제 환경의 변화는 한인들에게도 직접적으로 다가왔다. 해고된 미국인들이 많아지면서 소매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세탁소나 네일, 델리 등 한인 주력업종들의 매출이 크게 줄었다. 소비심리가 위축되면서 요식업소 등 한인 소매업체들의 폐업도 많아졌다. 경제 환경이 계속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그냥 일만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한인들의 생각도 바뀌었다. 경기 악화에 대한 구조적인 문제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다.

지난해 월가 시위로 시끄러웠을 때 해당 지역의 한인 소상인들의 반응을 기억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예전같으면 시위 때문에 장사안된다고 불평을 했을텐데, 이번에는 의외로 조용했다. 시위에 대한 불만이 없지는 않았겠지만 시위의 취지에는 어느 정도 공감한다는 의미가 더 컸을 것으로 보인다. ‘1%대 99%’라는 월가 시위대의 구호에 상당부분 공감을 한 것이다. 미국 의회예산국(CBO)의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상위 1% 소득의 부자들이 지난 30년간 거의 3
배(275%)나 소득이 증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가 시위에 참여한 시위대들의 직접적인 불만도 바로 빈부 격차다. 상위 소득계층 1%가 1993년부터 2008년 사이 미국에서 생성된 소득의 52%를 가져간 것이다. 99%의 불만은 미국인 대부분에게 어느 정도 공감이 되는 스토리다. 공화당과 보수파에서도 이같은 경제적 불균형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을 정도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전통적인 미국식 사고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됐다’고 보도한 바 있다. 월가 시위가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지난해 약간 우스운 일이 있었다.지난해 12월 한국의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출연진들이 강연차 뉴욕을 방문했다가 월가 점령 시위대를 응원하기 위해 시위대를 찾은 적이 있다. 이를 두고 그 당시 모 한인단체가
“(나꼼수가) 진보, 통합, 개혁 등의 허울 좋은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며 미국과 한국 사회의 어두운 면만 기형적으로 왜곡해 시민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난해 많은 한인들이 실소를 머금었다.

지난해 미국 뿐아니라 전세계를 뒤흔들었던 월가 시위는 결과론적인 성공 여부와 상관없이 그 상징성에 더 큰 의미가 있다. 탐욕스러운, ‘그들만의 리그’로 불리는 금융시장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결국 이 단체는 스스로 월가 시위에 대한 편향된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 경제를 보는 프레임이 변화하고 있다. ‘나만 열심히 하면 된다’는 기본 전제에서 이제는 건전한 구조가 뒷받침해야 한다는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 이것이 올해의 사회 경제적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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