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간은 시한부 인생

2012-01-07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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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60년 만에 돌아온다는 흑룡의 해 임진년 새해가 일주일이나 지났다. “아홉, 여덟, 일곱, 여섯, 다섯, 넷, 셋, 둘, 하나, 2012년!” 새해를 맞이한 모든 사람들의 환호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타임스퀘어에 모여든 1백만 여명의 군중들은 옆 사람과 뜨겁게 포옹을 하며 연인들끼린 입맞춤으로 새해의 문은 열렸다.

새해를 맞이하면서 생각되는 것 중 하나는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에겐 새해가 어떻게 비쳐졌을까 하는 의문이다. 병원이나 자택에서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고통 속에 있을 호스피스 환자들. 죽음을 선고받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 그들에게도 새해의 기분이 가슴 벅차게 느껴졌을까. <마지막 강의>의 저자 랜디 포시(1960-2008). 6개월 시한부인생으로 살며 48세의 생을 마감한 카네기멜론대학 교수. 사랑하는 아내와 세 자녀를 둔 아버지. 그는 가고 없지만 시한부 인생을 사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어떻게 살아야 생을 의미 있게 사는지를 가르쳐주고 떠났다.


그는 말한다. “시간은 당신이 가진 전부다. 그리고 당신은 언젠가 생각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참 슬픈 일이지만 인간은 반드시 죽게 되어 있다. 분명 유한한 존재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꿈이 있기 때문에, 하고자 하는 열망이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감사할수록 삶은 위대해진다. 꿈을 꿀 수 있다면 이룰 수도 있다. 완전히 악한 사람은 없다, 모두에게서 좋은 면을 발견하라. 절대 포기하지 말라. 행운은 준비가 기회를 만날 때 온다. 내일을 두려워하지 말라, 오늘 바로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등등. 컴퓨터과학교수였던 랜디.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 그가 심히 괴로워했던 것은 사랑하는 아내와 남겨두고 갈 세 자녀였다. 특히 자녀들이 아버지 없이 자랄 것을 가장 힘들어했고 자녀들에게 ‘마지막 강의’를 동영상으로 만들어 선물로 남겼다. 그에게는 시한부 6개월 동안의 매일 매일이 새해처럼 소중했을 것이 틀림없다.

시한부 인생으로 새해를 맞이한 한 사람이 있다. 강영우(68)박사다. 췌장암으로 지난해 11월29일,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그는 시각장애인으로 한인 최초의 박사학위(피츠버그대학교· Ph.D.)를 받았으며 두 눈이 정상인 사람들보다도 더 큰 아메리칸드림(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정책차관보)을 이루었다.그는 새해를 맞이하며 작별 인사할 시간을 허락함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한다. 또 “암보다 더 깊은 병은 포기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자기 자신을 포기하는 것이 가장 나쁘다. 나는 나쁜 일이 생기면 미래에 더 좋은 일이 생긴다는 긍정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늘 살아왔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라며 희망을 말해준다. 또 강박사는 긍정적인 가치관 속에 섬김과 나눔의 가치관이 더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는 미국 명문 사립고 필립스의 건학 이념인 “Not for Self”(나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다)를 인용하며 인생의 목적은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세상에 주어 더 좋은 세상으로 만드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법적으로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 그들에겐 새해가 더 두려운 게 아닐까. “혹시나 새 해엔 내 목숨이~”하며. 그들에겐 하루하루가 공포의 날일 것만 같다. 그러나 감옥 안에서도 “오늘, 살아 숨 쉬고 있음에 더 감사하다”며 살아가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살아있는 동안 서로 나누며 돕고 섬기는 자세로 살아간다면 어떨까. 그러면 앞으로 있을 모든 시간과 날이 새해 새 기분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소유할 수 있는 시간이 결코 긴 것은 아니다. 랜디 포시, 강영우박사, 죽음을 선고받은 사람들. 그들만 시한부 인생은 아니다. 길고 짧음이 문제이지 우리 모두가 다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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