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는 세월

2011-12-31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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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려/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가고 해가가고 산천초목 다 바뀌어도/ 이 내 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서유석의 ‘가는 세월’이다. 희끗 희끗 머리가 파뿌리모양 변한 어른들이 즐겨 부르는 노래다.

유행가라기보다는 심오한 인생철학이 담겨있다. 진정으로, 가는 세월은 아무도 잡을 수 없다. 그렇게 가는 세월 속에서 인생은 아기로 태어나 어른이 되어 슬픔과 행복을 맛보며 늙어 변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으니 마음이란다. 마음이란 참으로 묘한 존재다. 존재라 말함은, 마음이란 형태도 없고 잡을 수도 없지만 분명히 살아서 사람을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다. 서유석의 노랫말처럼 우리 몸이 흙이 된다 하더라도 마음만은 영원한 존재일 수 있다. 마음이란 영원성을 갖고 있기에 그렇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영원성이 보이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곧 마음이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마음은 보이는 몸의 주인이다. 아무리 몸이 가려하는 방향이 있어도 마음이 원치 않으면 갈 수 없다. 하지만 마음이 원치 않는데도 몸이 밀어붙이는 경우도 있다. 일종의 거역이자 반역이다. 지난 한 해 동안 우리는 얼마나 우리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였는가. 아니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이 원치 않은 것을 하였는가. 마음이란 그만큼 인생을 이끌어가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성서의 <잠언>에는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16:32)란 구절이 있다. 성을 빼앗기보다 자신의 마음을 통제하는 자를 더 크게 묘사했다.

사실,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무슨 큰일을 하겠는가. 불경 중 <화엄경>의 핵심사상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다. 만법유식(萬法唯識)과 같은 뜻이다. 세상사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창조한 것 혹은 모든 것이 마음이 만들어 낸 것에서 비롯된다는 뜻이다. 행과 불행은 외적인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행과 불행은 전적 마음에 달려 있다.

노자는 <도덕경>의 도의 속성으로 수덕(水德), 즉 물의 덕을 많이 강조했다. 흐르는 물은 서로 다투지 않으며, 물은 가장 낮은 곳을 찾아 흐르며, 네모진 곳에 부으면 네모꼴로 원형의 그릇에 담으면 원형의 꼴을 갖는 가장 유연한 것이 물이라 한다. 그러나 견고하고 완강한 것을 공격하는 데는 물보다 더 뛰어난 것이 없다고 한다. 그러며 노자는 마음을 물처럼 가지라고 권한다. 노자 <도덕경> 36장 ‘미명·은오’ 편에 유약승강강(柔弱勝剛强)이란 말이 나온다. “약하고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란 뜻이다.

사실이다. 마음이 부드러운 자가 강한 사람을 이긴다. 남자라고 강한 척, 화만 내면 뭐하나. 결코 부드러운 여자를 이길 길이 없음에야. 하늘거리는 버드나무가지는 약하다. 그렇지만 폭풍 속에서도 부러지지 않는다.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려면 마음을 자라게 해야 한다. 자란다는 뜻은 곧 수양을 말한다. 수양을 통해 강하고 통제하기 어려운 자신의 마음을 부드럽고 유연한, 흐르는 물 같은 마음으로 바꾸어야 한다. 수양하는 방법 중 하나에는 종교에 귀의하는 길도 있다.

신묘년 토끼해 2011년이 오늘로 사라진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다. 임진년 용의해 2012년이 내일로 시작된다. 희망의 임진년은 60년 만에 찾아오는 흑룡(黑龍)의 해다. 오랫동안 물속에 잠겨 있던 용이 승천하는 해다. 우리에게도 용이 물속에서 나와 하늘을 나르듯, 승천의 마음을 지니고 격상하는 한 해가 되어지기를 소망해본다.

새해에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자. 마음속에 길이 있음을 알고 실행해보자. 외적인 조건에서 행과 불행을 논하지 말자. 물의 덕을 지니는 사람이 되어보자. 가는 세월 후엔 오는 세월이 있다. “이 내 몸이 흙이 되도 우리 마음 영원하리~”. 마음은 영원하다. 가는 세월과 함께 불행은 다 떨쳐버리자. 행복만 기억, 기대하며 오는 세월을 맞이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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