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영화 ‘도가니’ 를 보고

2011-11-09 (수)
크게 작게

▶ ■ 기윤실 호루라기

이번 아시아 지역 선교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한국에 들러 화제의 영화 ‘도가니’를 보았다. 이런 사회고발 영화가 한국에서 박스오피스 탑 순위에 올랐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물론 청각장애학교의 학생들에 대한 성폭행을 고발한 것이지만 이 영화는 더 나아가 한마디로 한국사회의 총체적 부패를 고발하려 했다.

특수학교 교사 자리까지 돈을 주어야만 하는 사학비리, 소관 타령하며 직무유기를 하는 교육청 비리, 공생관계로 자리 잡은 복지비리, 귀먹은 아이들의 하소연이라고 스스로 귀 막은 경찰과 검찰의 사법비리, 교인이라며 무조건 감싸고 도는 종교비리, 시민단체의 양심의 소리에는 집시법 위반으로 몰아가는 공권력 남용, 그리고 사회문제가 되고 공지영이 책을 통해 이를 이슈화하여도 가해교사가 버젓이 같은 학교에 복직되어 교단에 서있는 뻔뻔함, 게다가 영화의 고발로 국민적 분노가 들끓자 그제서야 교사복직을 취소시키겠다느니 학교의 문을 닫겠다느니 엉거주춤하는 정부당국…. 어디 하나 믿을 데가 없다.

그렇다면 도가니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가? 이건 우리에게 던져준 사명이어야 한다. 단지 감정적 분노에 그쳐서는 안 된다. 값싼 동정은 더더구나 안 된다. 물론 이건 “장애인들의 문제다”라고 발뺌해서도 안 된다. 도가니는 우리 모두의 문제, 한국사회가 지켜나가야 할 최소한의 의무를 이야기 한다. 영화가 고발하는 것처럼 장애인 인권문제는 이제 장애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장애인 인권의 둑이 무너지면 사회 전체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에서 2세 유아가 거리에서 차에 치여 죽어가는 데도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시대는 자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도무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러한 무관심과 냉혈적 태도가 자신과 가족에게 이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을 모른다. 사회가 사랑과 정의로 든든하게 결집되어 있지 않으면 사회는 이내 카오스가 되어 버리고 혼돈의 사회에서는 주먹이 법이 되고 마는 것이다.

우린 오늘 “지옥의 가장 뜨거운 곳은 도덕적 위기의 시대에 중립을 지킨 자들을 위해 예약되어 있다”라고 말한 스테판 에셀의 피 토하는 외침을 듣고 무서운 무관심의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영화를 보면서 목사의 한 사람으로 큰 부끄러움을 느꼈다. 사건의 가해자들이 교회 중직자이고 재판에서 그들을 옹호한 사람들도 교인들이다. 영화의 카메라는 재판에서 유리한 판정을 받자 기뻐하며 찬송을 부르며 기도하는 교인들을 비추며 한심한 듯 기독교를 비웃고 있었다. 물론 사회복지와 구제의 상당부분을 기독교가 말없이 담당해 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비리에 대해 면죄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잘 먹고 잘 사는 게 복이라고 가르친 교회가 책임을 져야 한다. 장애는 벌 받아서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회가 사과해야 한다.

사건을 양심 고발한 교사의 어머니가 “가족 먹여 살리려면 옳은 소리만으로는 안 된다”고 하는 감성적 설득은 이기적인 바람이다. 이 사회의 모든 부모들이 그리 바랄 것이다. 도가니는 그 편만한 이기심을 고발한다. 피해를 당한 학생 부모들의 비명에는 귀 막은 채, 청각장애 학교의 비리를 통해 양심의 소리에 귀먹은 사회를 고발한 영화를 보는 동안 뼛속 깊이 아픔이 스며들었다. 우리 장애 딸 조이를 생각하니 몸이 떨려왔다.


김 홍 덕 목사 <조이장애선교센터>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