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9.11을 돌아보며

2011-10-05 (수)
크게 작게

▶ <기윤실 호루라기>

미국은 약 3주 전에 9.11 10주년을 보냈다. 많은 미국인들에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건일지도 모른다. 혹은 피해 당사자들이 아닌 다른 이들에게는 잊혀져가는 사건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9.11은 역사적 상징이 되었다. 그것은 제국과 제국주의의 오만에 대한 열방의 분노의 상징이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를 보면 많은 강대국들과 제국들이 등장한다. 이집트와 바빌론을 비롯, 그리스, 로마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제국에 대한 성경의 진술은 우호적이지 않다. 가장 기본적으로 제국의 권력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대표적인 우상으로 제시된다. 제국의 정의는 하나님의 공의에 배치된다.

성경의 선지서들에는 스스로를 신격화하고 우상놀음을 벌이는 제국과 그 권력자들에 대한 심판과 경고가 가득하다. 제국과 제국주의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대신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횡령하여 흉내 내면서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인간의 교만의 최고 상징이다.


물론 성경이 전체적으로 제국에 대해서 부정 일변도인 것은 아니다. 성경은 국가로서 제국의 종복적인 특성을 장려한다. 국가는 하나님의 정의를 일부 시행하는 하나님의 종복이다. 제국도 마찬가지다.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말하는 ‘위에 있는 권세’의 대표적인 예는 로마 제국이었다. 성경은 국가로서 제국이 제공하는 공법적 질서를 지지한다. 동시에 그 공법적 질서가 하나님의 의에 기여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국가로서 제국이 저지르는 만행을 눈 감아 주지는 않는다. 그 만행의 대표적인 예는 물론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높이는 신격화다. 그동안 세계사와 국제질서 속에서 미국이 보여준 행동은 매우 복합적이다. 미국은 그 공법적인 사회질서로 말미암아 국제사회에서 귀감이 되는 나라로 추앙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보의 부재 탓일지도 모른다. 그들의 공법적인 사회질서는 거의 백인 위주로 실천되었던 질서였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는 특히 흑인과 히스패닉, 그리고 최근 편입된 중동, 인도를 포함한 아시안의 희생을 바탕으로 서 있는 매우 불의한 사회였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제국으로서 미국이 저지른 수탈과 만행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들이 세계 곳곳에서 저지른 만행은 미국의 이익을 위해 감추어져 왔던 것이다. 물론 미국보다 더 극악한 만행을 저지른 강대국들은 많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제국으로서 미국의 악행을 옹호할 수는 없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그 미국이 많은 이들의 의식 속에 공의롭고 베풀기를 잘하는 기독교 국가로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좋은 이미지가 9.11의 충격과 서로 상충하고 있다. 무엇이 진짜인가? 우리는 아직까지는 그 두 가지 이미지가 다 진실이라고 보고 싶다. 그것은 우리가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무 순진해서도 안 된다는 뜻이리라.

우리 이민자들, 특히 크리스천들이 미국을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제국을 바라보았던 성경의 시각이다. 우리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하나님의 종복으로서 하나님의 공법적 질서를 옹호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건강한 시민으로 활동해야 할 것이다. 참 신앙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제국의 모습과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우상적인 제국의 모습을 식별한다. 그리고 국가와 신앙을 혼동하지 않는다.

성경을 보면, 많은 제국이 일어났다가 스러져 갔다. 제국도 망한다. 심지어 로마 제국도 망했다. 오늘의 미국은 어떠한가? 제국의 황혼에 들어섰을까? 시대를 꿰뚫어 보았던 선지자들의 안목과 영성이 필요한 때다.


김 재 영 목사
LA기윤실 사무국장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