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가을의 노래

2011-10-0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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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경기가 끝없이 바닥을 기고 있고, 민심도 크게 각박해졌지만 풍요의 계절 가을은 어김없이 우리 곁에 다시 왔다.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의 계절,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결실의 계절, 문화예술 및 스포츠가 만발하는 축제의 계절이다. 경제적으로 버겁고 삶이 고되다고 해도 우리는 이 가을을 정신적으로나마 풍요롭게 살찌는 계절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10월에 접어들어 하늘이 점점 높아지면서 가을도 점차 깊어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수원에는 가지가 휘도록 주렁주렁 매달린 사과, 배, 복숭아 등 탐스러운 과일을 따는 손길이 분주하다.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 빛 하늘. 어렸을 때 고향에서 봤던 그 가을하늘과 똑같다. 둥글둥글 피어나는 뭉게구름, 새털처럼 가벼운 깃털구름이 정겹다. 머지않아 먼 산의 나무들이 울긋불긋 만산홍엽을 이루며 수채화 같은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마음이 복잡해질 때나 일상에 지칠 때 청명한 가을하늘을 바라보면 가슴이 시원해지고 기분이 탁 트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가을이 되면 옛날을 회상하며 오래 잊고 있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기도 하고, 불현듯 옛 사랑을 만나보고 싶어 하는 사람도 있다. 예전처럼 누군가와 찻집에 마주 앉아 음악을 들으면서 가을에 한껏 취해보고 싶다는 사람도 있다. 가을이 주는 특별한 즐거움이요, 정취이다.


가을은 어느 계절보다도 풍요와 감사와 사랑이 넘치는 계절이다. 하지만 우리의 삶이 너무 분주하고 빡빡하다 보니 풍요는 고사하고 대부분 정신적으로 고갈된 상태이다. 이 가을에 우리는 잠시라도 일에서 벗어나 지나온 생활을 반추하며 미래를 계획하는 여유를 한번쯤 가져 보자. 삶이 아무리 힘겨워도 이 가을만은 너무 돈 돈 하며 살지 말자. 돈은 이 세상에 머무르는 동안만 필요한 것이다. 어차피 죽은 뒤에 가져갈 수 없는 것이라면 물질보다 마음의 여유가 더 중요하다.

꼭 돈이 많아야만 부자는 아니다. 마음의 부자가 진정한 부자이다. 땅에서 눈을 들어 저 맑고 화창한 가을 하늘을 바라보자. 그 위에 두둥실 떠있는 구름 속에는 우리가 그토록 추구하는 물질이 아니라 삶의 지혜와 하늘이 주는 교훈이 담겨있을 수 있다. 어깨를 활짝 펴고 그 것이 우리에게 말해주려는 참 진리에 귀를 기울이자. 저 맑고 달콤한 공기, 계곡을 달리는 깨끗한 물, 그리고 아름다운 대자연과 그 속에 노니는 숱한 종류의 새들과 크고 작은 짐승들을 사랑하자. 지구촌의 수많은 인간들도 마음껏 사랑하자.

다른 어느 계절보다 풍성함을 구가하는 이 가을, 넉넉한 마음으로 사랑의 노래를 한껏 불러보자. 저 높은 하늘을 향해 한번 소리쳐보기도 하고 크게 웃어보기도 하자. 가을은 특히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들으며 책속에 파묻히기 좋은 등화가친의 계절이다. 전자기기가 발달된 시대라고는 하지만 고요하고 깊은 밤, 종잇장 넘기는 소리를 들으며 책 속에도 한번 깊이 빠져 보자.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시간을 내서 어디론가 훌쩍 발길도 옮겨 보자. 사는 것은 별 게 아니다. 나의 삶은 내가 만드는 대로 만들어지기 마련이다. 최상의 삶은 있는 그대로 소박하게 사는 것이다.

법정스님은 그의 어록 집 ‘오두막 편지’에서 “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답게 살고 싶다”고 노래했다. 이 멋진 풍요의 계절에 텅 빈 가슴을 가득 채우기를 원하는 독자들을 위해 하인리히 하이네의 시 ‘가을기도’를 소개한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아름다움으로 그려내는 한 폭의 수채화이게 하소서/ 이 가을이 종일토록/... 가벼운 새털구름 한자락 고이 걸어두는 아름다운 가을이게 하소서/ 바람에 살랑이는 코스모스 향기따라 가을을 실어옴에/... 이 가을이 내게 쓸쓸함이지 않게 하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이 가을이 더 이상 외로움을 그려내는 가을이지 않게 하소서/ 단풍나무 불붙어 몸살나는 그리움으로/... 내 고운님을 향한 나만의 고운 그리움이게 하소서.”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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