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의 잠 못이루는 밤

2011-09-1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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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찬(부국장 대우/경제팀장)

해외금융자산 자진신고(OVDI)가 지난 9일 마감됐다.해외금융자산 신고와 같은 세금 문제는 가장 사적인 영역이어서, 누구도 드러내놓고 이렇다 저렇다 말하진 않았지만 속으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딜레마에 빠진 사람이 많았다. 마치 ‘백조의 유영’처럼 물위에서는 고요하지만 물밑에서는 큰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의 금융자산을 신고하고 싶어도 벌금이 너무 부담이 된다는 반응이 많았다. ‘설마 한국에 있는 계좌를 일일이 다 조사하겠느냐’하는 생각도 있고, ‘이정도 금액은 괜찮겠지’하는 근거없는 자신감도 있다. 어느 결정이 옳았는지는 조금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이번 OVDI 마감 이후 주목해야 할 것은 2가지 정도다. 첫째는 앞으로 국세청의 단속이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당초 해외금융자산 문제는 지난 2009년 국세청이 스위스 UBS은행에 있는 미국인의 계좌를 탈세 혐의로 추적하는 과정에서 촉발됐다. UBS은행에는 미국인 소유의 5만2,000개 계좌, 148억달러가 있었다. 미국과 스위스는 치열한 법적 논쟁을 벌이면서 힘겨루기를 했지만 결국 스위스가 고객 정보를 제공하기로 함으로써 미국이 승리했다.


미국 국세청은 이 과정에서 해외 금융자산이라는 손쉬운(?) 세수 확보의 공식을 발견했다. 불경기로 세금 걷기는 어렵고, 테러 전쟁의 여파로 미국 정부의 부채는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 해외로 눈을 돌린 것은 사실 기가 막힌 묘수다. 무엇보다 해외 금융자산에 대한 세금 부과는 일반적인 미국인들과 큰 상관이 없기 때문에 조세 저항이 크지 않다는 점이 고려가 됐을 것이다. 더군다나 미국이 ‘이민자의 나라’인만큼 세금 추징의 소스도 다양하다.

또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 이번처럼 자진신고기간을 설정해 앉아서 세금을 걷을 수도 있고, 가끔씩 대형 탈세 케이스를 터뜨려 경각심을 일깨우는 방법도 있다. 국세청이 상당수의 직원을 충원하면서 본격적인 단속 준비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세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전언이다. 두 번째는 앞으로 ‘(규정을) 잘 몰랐다’, 또는 ‘문화적인 차이’라는 말이 통하지 않겠구나 하는 것이다.

해외금융자산 신고와 관련된 직접적인 세법 규정은 FBAR이다. 해외에 있는 은행과 증권, 펀드계좌 등에 1만달러 이상의 금융자산이 있을 경우 6월30일까지 FBAR 양식을 통해 보고하도록 한 것이다. 이 규정은 74년에 이미 제정된 것이지만 세무 전문가들도 거의 몰랐다. 위에서 말했듯이 UBS은행 사건이 터지면서 이 규정이 힘을 받게 됐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이 규정을 시행하기는 어려웠던지 국세청은 2009년 신고 마감을 2차례나 연장하면서 홍보에 나섰다.

국세청이 올해 또다시 2차 자진신고를 실시한 것은 높은 벌금에 대한 부담 때문에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FBAR를 신고하지 않았을 경우 벌금은 금액에 따라 차이가 있다. 계좌에 25만달러 이상 있을 경우 잔고의 50%를 내야 한다. 최고 잔고가 5만달러 이하면 한 계좌 당 500달러, 최대 5,000달러의 벌금이 부과된다. 최고 잔고가 25만달러 이하일 경우 한 계좌 당 5,000달러, 최대 벌금은 최고 잔액의 10%이다. 하지만 미신고기간이 2년만 지나도 원금이 없어질 정도라면 자진신고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

이번 2차 OVDI는 이같은 납세자들의 고민을 감안해 2003년부터 2010년까지 8년 중 가장 높은 금액의 20%를 벌금으로 내면 양성화해주는 것이었다. 이는 기존의 벌금과 비교하면 상당한 혜택이었다. 또 자진신고를 하면서 그동안 이 규정을 잘 몰라서 신고를 안했다는 것을 증명하면 이보다 훨씬 적은 벌금으로도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마감 이후 상황은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국세청이 그동안 사실상 사면 프로그램인 OVDI를 2번이나 실시했고, 홍보도 충분히 됐다는 판단을 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잘 몰랐다’면서 빠져나갈 구멍이 적어진 것이다.

해외금융자산 신고 문제는 어느 누구도-심지어 세무 전문가들조차- 딱 부러진 해법을 제시하기 어려운 문제다. 겉으로는 ‘괜찮겠지’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을 벗어나기 어렵다. 잠을 못잔다는 한인들도 많았다. 뉴욕의 잠 못이루는 밤(Sleepless in NY)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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