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자회담을 기다리는 마음

2011-09-09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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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석(한인유권자센터 상임이사)

지난 7월22일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남측의 위성락 평화교섭본부장과 북측의 이용호 외무부상이 만났다. 그 즉시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과 박의춘 북한외상과의 회담이 이루어졌으며 그 회담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계관 북한 제1부상이 뉴욕을 향해서 평양을 떠났다. 한국의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유지해 왔던 3단계 접근법인 ‘남북대화-미북접촉-6자회담’의 방식이 처음으로 작동되었다.

‘위성락&이용호’의 만남이 남북대화였는지에 관해선 아무런 관심도 끌지 못했다. 6자회담 재개를 위해서 당사국(우리의 입장으로 당사국)인 남과 북의 존재와 비중이 이렇다는 것을 가장 냉정하게 보여주는 예다. ‘천안함, 연평도’ 관련 사과와 재발방지를 6자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주장해 온 한국정부의 입장은 어디에도 없고 김계관은 뉴욕에 도착했다. 아무리 당사국이라 해도 관계국들과의 협의와 조율 없는 입장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가르쳐 준다.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형편은 이미 이렇게 되어 버렸다. 6자회담이 남북관계를 앞질러서는 안 된다는 한국의 입장이나 남북관계의 속도가 한미관계에 어떠한 영향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입장이나 피장파장이란 그림이다.


오바마행정부에 들어와서 그나마 대북정책의 기본방향을 눈치 챌 수 있었던 시기는 2009년 늦가을이었다. 2009년 8월 클린턴 전 대통령이 북한에 들어가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고 구금 중이던 아시아계 미국인 여기자 2명을 데리고 나왔다. 9월과 10월엔 중국 다이빙귀 국무위원과 원자바오 총리가 북한을 연쇄 방문하여 경제교류의 폭을 크게 늘리기로 합의했다. 이어서 미국의 스티브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강석주를 만나러 평양으로 떠날 채비를 했는데 직전에 그만 ‘제재의 효과가 나기도 전에 대화 테이블로 달려가는 것은 북한 술책에 말려드는 것’이란 한국정부의 강력한 제동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2010년 초반부터 서울에서 터져 나오는 남북정상회담 관련 정보는 미국을 당황케 했다. 화가 난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차관은 “남북관계는 6자회담의 속도에 조응해야 한다”라고 하면서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략적 인내(Strategic Patience)’라고 표현했다. 이명박 정부의 이중성에 불만을 나타낸 것이다. 2012년 대선 캠페인을 앞두고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이 오히려 후퇴했고 북한의 핵능력은 강화되었다는 비난을 걱정하게 되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둔 이명박 정부는 남북관계를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제2의 연평도 사태가 날 수도 있다는 우려와 무엇보다도 남북관계에 실패(후퇴)로 기록되는 정부가 될지도 모른다는 초조감이 서서히 들기 시작되었다. 미국과 한국의 정부가 북한과 대화를 터야 하는 정치적인 수요이다.

지난 1세기 동안 한반도에선 강대국에 의한 전쟁이 크게 세 번 일어났다. 1894년도의 중일전쟁, 1904년의 러일전쟁, 그리고 1950년의 한국전쟁이다. 이러한 역사적인 비극은 다시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강대국 사이에 낀 한반도의 운명은 늘 이렇게 고달프다. 한국은 싫든 좋든 강대국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 미국의 한인들도 그러한 강대국출신들의 틈바구니에 있는 것이 마찬가지다. 최근의 동북아정세가 100년전과 아주 흡사하다. 중국의 부상으로 중·일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서서히 격화되고 있고 한반도가 그 전장터가 되기 십상이다. 게다가 북한의 장래는 더욱 더 불투명해진다. 한반도의 장래를 위한 미국의 존재가치는 더욱더 명료해진다. 미주한인이 그 한가운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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