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에는 ‘리허설’ 이 없다

2011-09-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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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인의 신앙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그래서 결단코 실패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이다.

‘스무 살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What I Wish I Knew When I Was 20)이라는 책이 있다. 스탠포드 의대에서 신경과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경영과학 학부에서 기업가 정신과 혁신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는 티나 실리그(Tina Seelig) 교수가 쓴 ‘스탠포드대 미래인생 보고서’다.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후회가 있다. 왜 그 나를 찾아 온 그 좋은 기회를 붙잡지 못하고 그냥 놓쳐버린 걸까. 그 기회를 붙잡아 이용하는 것도, 놓쳐 버리는 것도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몇 달 전 대장경 검사를 받기 위해 검사대 위에 누운 50대 환자분의 손목에서 몇 가지 색상으로 꼬아 만든 손목끈을 본적이 있다. 물론 10대들이 우정의 표시나 자기 소원을 담은 밴드를 찬 것을 심심찮게 보아 왔다.

허나 50대의 의젓한(?) 신사양반의 팔목에 감긴 아름다운 ‘색실’ 팔찌였기에 호기심이 들어 조용히 물어 보았다. 그러자 환자는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의사 선생님! 실은 제가 수년간 알코올 중독자로 살아 왔는데 금년 들어 금주모임에 참여했습니다.

술 마시고 싶은 충동이 올 때마다 이 ‘금주실천’ 팔찌를 보면서 금주한 지 8개월째가 되고 있습니다. 한 번 사는 인생, 힘들지만 잘 살아 보고 싶었습니다.” 순간, 가슴 한 구석이 뭉클해지며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인생을 일장춘몽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인생은 꿈이 아니기에 깨어난다 해서 달라질 리 없다. 그렇다고 인생이 연극이냐 하면 그 또한 거리가 멀다. 연극에는 반복할 기회가 주어지지만, 인생에는 결코 ‘리허설’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연극은 실수해도 다시 환원할 수 있지만 삶은 한 번 실수하면 그걸로 끝장이다. 물론 죽기 전 생명이 붙어 있는 동안 회개하면 말이 달라지겠지만, 회개하지 않은 채 생을 마치면 다시 돌이킬 기회가 없다는 뜻이다. 진정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것이 인생 아니겠는가.

그 때문에 주일날 교회에 가면 사람들에게 “깨어 준비하라”고 가르치는 모양이다. 악마의 세력이 먹이를 찾아 헤매는 사자처럼 사람들의 영혼을 악에 빠뜨리려고 최후 발악을 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부모님 세대만 해도 도적질하다 붙들리면 남이 묻기도 전에 스스로 얼굴부터 붉어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은 죄를 지은 사람이 얼굴을 붉히거나 고개를 떨구는 일이 태곳적 전설이 되었다. 이제는 부끄러움을 느끼기는커녕 하느님조차 두려워할 줄 모르는 무서운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에페소인들에게 보내는 서간에서 “그러니 여러분은 이방인들처럼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헛된 생각을 하고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받지 못할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옛 생활을 청산하고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 올바르고 거룩한 진리의 삶을 사십시오”라고 권고하신 것 아닌가! 단 한 번밖에 살 수 없는, ‘리허설’ 없는 진짜 소중한 인생이기에….


김 재 동
<가톨릭 종신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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