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한인 정치력의 현 주소

2011-08-18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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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수(사회 2팀 차장)

팰팍 타운법원에서 지난 11일 열린 안동성군 재판은 한인사회의 단결력을 재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재판이 예정된 오후 4시 팰팍 법정은 이미 한인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지만 첫 번째로 잡혀있었던 안군의 재판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시작과 함께 맨 마지막으로 미뤄졌다. 재판 시작 전 한인들이 ‘우리는 공정한 재판을 요구한다’, ‘동성이는 범죄자가 아니다’ 등
의 피켓을 들고 법정 안에서 시위 아닌 시위를 벌인 탓이었을까? 아니면 법정은 물론 복도까지 가득 메운 한인들의 열기가 너무 뜨거웠던 탓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판사는 이날 피켓 철수와 함께 안군의 재판을 맨 마지막에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갑작스런 일정 변경에 장내가 잠시 술렁였지만 대부분 자리를 굳게 지켰고 안군의 재판이 시작된 오후 6시40분께 법정은 다시 한인들로 가득 찼다. 학교 식당에서 발생한 학생간의 우발적인 주먹다짐, 그것도 정당방위 차원에서 발생한 사건을 법정까지 끌고 온 것을 납득할 수 없다는 변호인측의 주장과 성인이 미성년자를 폭행한 사건이므로 반드시 실형을 선고해야 한다는 검사측의 주장이 팽팽히 맞서 이날 재판은 무려 4시간 넘게 이어졌다.


하지만 이날 법정을 떠나는 한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법정은 물론 복도까지 가득 메운 한인들은 검사의 증인심문에 귀를 기울이며 논리와 상식에 어긋나는 답변이 나올 때마다 야유를 보내 판사의 주의를 받기도 했다. 또한 변호인측의 날카로운 지적이 있을 땐 박수로 안군을 응원했다. 판사는 이날 검사의 1년 구형 청구에도 불구하고 실형 없는 유죄 판결을 내려 안군의 손을 들어줬다. 이날 재판을 승리로 이끈 주역은 안군을 변호한 김&배 법무법인과 안군을 끝까지 응원한 한인들로 큰 박수를 보낸다. 유죄판결로 비록 완전한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지만 한인사회의 단결력이 빛을 발휘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날 재판은 아쉬움도 남겼다. 팰팍의 한인 정치인들이 처음부터 적극 나섰더라면 재판까지는 안 왔을 것이라는 한인들의 쓴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온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날 재판장에 크리스 정 교육위원만이 유일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킨 덕에 한인들의 분노는 다소 수그러들었지만 다른 한인 시의원들과 교육위원은 모습을 비추지 않아 실망스럽다는 표정은 여전했다. 이는 특히 타운 검사의 인준과 임명권이 바로 타운의 지역 정치인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한인들이 잘 알고 있었기에 더더욱 실망감이 클 수밖에 없었다. 검사의 고유권한인 기소권은 그 누구도 막을 수가 없다.

때문에 한인들이 팰팍 한인 정치인들에게 기대한 것은 재판이 아닌 정치력을 통한 합의 도출이 아니었을까? 이번 사건으로 한인 정치력의 현주소가 확인됐다. 이를 교훈 삼아 더욱 분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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