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왕따 당하는 노인들

2011-08-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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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목사/수필가)
“9988234”(아흔 아홉살 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틀에서 삼일 아프고 사흘 만에 죽는 것이 가장 큰 행복)라는 말을 모를 사람은 없으리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말은 사람들의 희망사항으로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며 확산됐던 말인데 이제는 그 말이 현실화 되었다고 본다. 의약품의 발달과 고단위 영양섭취로 인하여 인간의 평균 수명이 몇 년 사이에 많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소원성취가 되었다고 자축이라도 벌일 것인가? “수즉다욕”(壽卽多辱)이라
는 말이 있듯이 오래 사는 것만이 장땡은 아닌 것이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있어서 문젯거리 중의 하나는 ‘노인문제’인 것이다. 평균연령이 늘어나는데 반하여 직장에서는 조기은퇴(명퇴)를 시키는 바람에 할 일 없는 노인의 수가 급증하고 있는 형편이다. 사람이 할 일 없이 먹고 논다는 것은 하루 이틀 말이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궁여지책으로 여기 저기 다니며 기웃거려 봐야 가는 곳마다 왕따를 당하는 일 뿐이다. 그 왕따가 가장 심한 곳이 교회가 아닌가 싶다. 이런 일들과는 무관하게 나는 좀 앞당겨 조기은퇴를 했는데 졸지에 하던 일을 멈추고 나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막연해 의구심마저 생기기도 했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기에 차분히 마음을 가다듬고 제2의 인생설계를 세우고는 평소에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했던 취미생활을 즐기면서 교회도 이 교회 저 교회 자유롭게 순례해 보다보니 전에 느끼지 못했던 교회의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느 교회에서는 장로라는 사람이 노골적으로 눈치를 주어 얼굴을 마주 보기가 민망스러웠던 적도 있었다. 문을 활짝 열어놓고 “아무나 와도 좋소!”라는 찬송을 불러야 할 교회가 이다지도 편협하고 옹졸해서야 원! 그 옛날 인도의 성자 간디가 영국교회를 향하여 “예수는 놔두고 기독교는 가져가라!”고 외쳤다는 말의 뜻을 실감하게 되었다.


교회에는 여러 가지 직책과 직분이 있다. 장로, 권사, 집사 등인데 시무직이 아닌 경우에는 원로, 은퇴, 협동, 명예 라는 접두사를 붙여서 골고루 직분을 부여한다. 여기에서도 오로지 왕따 당하는 사람은 노인 목사다. 시무장로가 아니더라도 명예장로나 협동장로나 은퇴장로는 돌아가면서 차례가 되면 공식예배
때 대표기도도 하고, 성찬식 때에는 성찬 위원으로 활동을 하는데 오로지 은퇴목사만이 모든 일에서 제외된 채 우두커니 구경만 하게 된다.

일년에 특별한 주일들이 있다. 부활절, 감사절, 성탄절, 창립기념주일, 송구영신예배 등. 그럴 때면 은퇴한 노인 목사에게 설교권을 준다면 더없이 좋은 일이고, 그도 아니라면 축도권이라도 준다면 그런대로 위안이 되련만 그것마저도 인색하니 철저하게 왕따를 당하는 셈이다. 현직 담임목사들이 무엇인가 크게 착각을 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못해 한심한 생각이 든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자신들은 늙지 않고 영원무궁토록 목회를 하리라는 착각이다.

조만간에 때가 되면 자신들도 왕따의 대상에서 제외될 수 없다는 사실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 노인목사들을 홀대하는 우를 계속하지 말았으면 싶다. 내 나이 내일 모래 80이니 후배들을 아끼는 뜻에서 하고 싶은 말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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