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지금은 ‘대 고난’의 시기

2011-08-1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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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요즘은 매일 아침 새로 떠오르는 뉴스에 촉각이 곤두선다. ‘블랙먼데이 현실로… 다우 634P 대폭락’ ‘전 세계 증시 동반하락 패닉’ 등 지난 한 주간 조간신문의 굵직굵직한 제목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착잡하게 만들었다. 미국은 부채한도액 증액법안을 극적으로 타결, 우려했던 국가부도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다. 하지만 계속되는 디폴트 가능성, 부양책 위축우려, 투자심리 냉각으로 미증유의 증시 사태를 맞았고, 이로 인해 미국의 신용등급평가가 사상 처음으로 강등되면서 전 세계 증시가 동반 하락하는 숨가쁜 상황이 초래됐다.

미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승전국이 된 후 발 빠르게 세계 중심국가로 부상하면서 한동안 경제적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1929년 10월 주식시장 붕괴와 함께 호경기가 막을 내리고 1929~1939년 10년간 불황이 지속되는 대 위기를 겪었다. 미국은 이때 경제가 계속 후퇴하면서 1932년까지 노동자의 4분의 1이 실직하는 엄청난 수난을 겪었으며 이 불황의 영향은 즉시 유럽 경제에 파급돼 독일과 영국 등 여러 산업국가에서 수백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는 상황
에 처해졌다.

그때와 꼭 같은 급박한 상황이 지금 또 다시 전개되고 있다. 언제 이 위기가 풀릴 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에서 매일 매일을 초조하게 맞고 있다. 미국은 지난 3년간 맨해탄 월가에서 촉발된 경제위기로 엄청난 수난을 겪어왔다. 설상가상으로 금융위기까지 맞게 됐으니 앞으로 우리들의 먹고 사는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참으로 걱정이다. 이번 금융위기를 놓고 전문가들이 더블딥과 장기불황을 예고하면서 ‘미국의 달러 위력 추락’ ‘미 제국의 몰락’이라는 제목의 충격적인 기사들이 신문 지면을 장식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장기간의 경기침체로 실업자가 1,000만여명을 헤아리고 있다. 대학 졸업생들이 일자리가 없어 부모의 집으로 돌아가 빈둥빈둥 놀며 학비 융자금을 제대로 갚지 못해 우울해 하고 있다. 또 해마다 오르기만 하는 등록금을 감당 못해 학교를 포기하거나 휴학한 후 막일을 하는 대학생들도 늘어나고 있다. 몇 해 전까지도 차고 넘치던 풍요의 나라 미국에서 끼니를 제대로 해결 못하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다.

요즘 점심시간에 거리를 산책하다 보면 신문사 인근의 큰 기업체에 다니는 미국인들이 정장차림으로 길거리 밴이나 트럭에서 파는 패스트푸드 음식을 사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거리에 주차된 자동차 안이나 공원 풀밭에 앉아 노점상에서 사온 음식을 먹고 있는 직장인들도 꽤 많이 눈에 띤다.
그런데 일부 한인들의 모습은 경기침체나 금융위기 상황과 걸맞지 않게 여전히 여유 있고 풍요로워 보인다. 한국식당엔 갖가지 반찬이 넘쳐나고 먹다 남은 고기 등 비싼 음식들이 고스란히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광경을 쉽게 볼 수 있다. 다른 인종은 다 어려운데 한인들의 살림살이는 아무런 문제없이 탄탄한 것인가?

북한의 주민들이 식량부족으로 줄줄이 굶어죽고 있다. 세계 최악의 빈곤국인 소말리아에서도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에 걸려 최근 석 달 새 3만여명이 죽었고 이웃 아프리카 국가에서도 1,000만명이 아사위기에 처해 있다는데 우리는 이래도 되는 것인가? 그렇다고 우리가 무조건 먹지 않고 쓰지도 않고 살자는 말은 아니다. 먹고, 입고, 쓸 때는 쓰되 지금 같은 어려운 시기에는 불요불급한 일에 낭비하는 일은 없어야 바람직하다는 말이다. 미국인들 중에도 극소수 부유층은 경기침체를 아랑곳 않는다. 이들의 사치품 구입은 지난 10개월 연속적으로 증가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부티를 내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각자가 처해있는 상황이 어떻든 경제학자 폴 로머 교수(뉴욕대)는 미국의 현 상황을 ‘대 고난(Great Distress)’의 시기로 정의했다. 그는 이 같은 상황이 앞으로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인사회 앞에도 넘어가야 할 고난의 고개가 버티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삶을 영위해야 할지는 각자가 생각해 봐야 할 일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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