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 여름에, 무얼 먹지?

2011-08-0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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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불과 며칠 전 시금치를 삶은 물이 연탄 물처럼 시커먼 것을 보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포대 속에 넣어 날라져 온 시금치는 파릇파릇 싱싱하기 이를 데 없는데 삶은 물이 이러니 얼마나 방부제를 많이 썼으면 하고 느끼게 했다. 그 시금치는 중국산이었다. 3일에는 중국정부가 불량식품사건이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불법 식품첨가물에 대해 대대적인 단속을 벌여 2,000여명을 체포하고 약 5,000개 업체를 폐쇄했다고 발표했다.중국은 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등 불량식품 사건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자 2009년 식품안전법을 제정하고 단속해 왔으나 불량식품 사건은 계속되고 있다.

한국의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지난 7월 암 발생률을 높이는 방부제를 넣은 도토리묵과 메밀묵을 판매한 업체를 적발했다. 음식이 쉽게 변하지 않게 하여 제품의 판매기간을 늘리고자 한 검은 상술이었다. 더욱이 가정용 도토리묵 포장지에는 ‘무(無) 방부제’라고 쓰여 있다고 한다.중국이나 한국이나 때가 되면 심심찮게 터지는 먹거리 파동에 그래도 한국산이 낫지 하면서 한국마켓에 장을 보러 가나 기록적인 폭염이 찾아온 이번 여름, 먹거리는 여전히 고민이다.


3주전 화씨 100도가 넘은 날, 가스레인지 4개를 동시에 틀어놓고 요리를 한 적이 있다. 아무리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아도 불앞에서는 닦을 새도 없이 땀이 그냥 주르르 흘렀다. 저녁에 요리하여 밖에 내놓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다음날 냉장고에서 꺼낸 무나물과 국은 쉬어 있었다. 종종 사먹는 반찬 중 양념게장은 이틀만 되어도 새콤해지고 나물류는 미끈거려 아낌없이 버려
야 한다. 비싼 돈 주고 산 반찬이나 식품들이 괜찮고, 안 괜찮고의 경계에 서 있을 때 그냥 먹어, 말아, 잠시잠깐 진퇴양난에 빠지기도 하지만 ‘식중독 걸리면 병원비 더 들어’하고 결국 버린다.

그동안 미국에 살면서 식품에 관한 이야기는 끝이 없다. 배추 한 박스가 온통 애벌레 투성이라서 교환하러 간 적도 있고(벌레가 먹었으니 방부제 없이
신선하긴 하겠지만 초록색 애벌레집은 씻어도 떨어지지 않았다) 청국장을 열고 보니 새파란 곰팡이가 피어 있어 달려간 적도 있다. 작은 아이가 마트 밖에 뚜껑 연 채 파는 창란젓을 먹고는 몇 시간 후 발긋발긋 발진이 돋아 앰블런스 타고 응급실로 달려간 적도 있다. 박스로 산 사과마다 붙어있는 상표를 떼고 보니 멍든 부분이었다던가, 두 줄 깔린 오렌지 아랫부분은 반이 뭉크러져 있다거나 그런 경우는 애교에 속한다. 덥고 습한 날 식품은 금방 시들어버리고 음식은 부패하니 조금이라도 더 판매기간을 늘리려고 못먹는 방부제를 쓰는 업자들의 비상식적인 상술을 대할 때마다 ‘사람이기를 포기했나봐, 본인이나 가족들은 못먹게 하겠지’ 한다. 좀체 악의 뿌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햄, 소시지, 어묵, 음료수, 빵, 케이크, 치즈, 장류 등 모든 가공식품에 방부제가 들어가지만 기준 허용치가 넘으니까 문제다. 보존을 목적으로 방부하기 위해 첨가하는 약제가 때로 음식물에 들어가서는 안될 것이 들어가고 비소나 납 등 중금속이 다량 함유된 것은 인체에 해를 끼친다.에어컨도 안 튼 부엌에서 일주일이상 된 식빵이 곰팡이도 피지 않고 뽀얀 속살 그대로 말짱한 것을 보면 무섭다. 완전 공포 그 자체다.요즘 같은 더위에 유효기간도, 냉장고 안도 믿을 수 없으니 일주일에 한번 보는 장을 두 번 보고, 뭐든 바로 요리하여 먹는 것이 최고 좋은 방법이겠다.안먹을 수도, 덜 먹을 수도 없으니 화학조미료 대신 천연 조미료가 들어간 것, 먹을 때 귀찮더라도 가공식품은 한번 물에 끓여낸 다음 먹는다거나, 좀더 부지런을 떨어야 할 것이다. 무얼 먹지? 또 고민이 시작된다. 8월 한달 매사 조심하며 9월 찬바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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