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세계인을 슬프게 하는 것

2011-07-30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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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욱 객원논설위원

세상을 살면서 가장 살아가기 어려운 방법 중 하나는 낙천적으로 껄껄 웃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세상이 아주 살기 힘들게 되어져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어려운 것은 착하고 죄 없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어가는 것을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왜, 아무 연관도 없는 사람들이 미치광이 같은 한 사람의 소행으로 죽어야만 하는가.

착한 사람들이 악한 사람들에게 당하고도 세상이 그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는 것 자체로도 세상은 잘못 된 것이 아닐까. 아니면 인간에게 종말이 오고 있다는 증거일까. 악이 성하고 의가 약해지면 세상은 끝이 아닐까.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자꾸 반복돼 일어나니 이 일을 어떻게 보고 이해해야 할지 난감해 진다. 지난 22일 오후 4시50분(현지시간) 노르웨이 오슬로 근교 호수에 자리 잡은 섬 우토야에선 인간살상극이 벌어졌다.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32). 그는 차라리 인간으로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 경찰복을 입고 섬에 나타난 그는 600여명의 캠프 참가자들을 점검할 것이 있다고 해 모아 놓고 가져간 총으로 난사를 시작했다.


105분 동안 저질러진 그의 총기난사로 인해 아무 죄도 없는 청소년들이 수없이 죽어갔다. 죽은 사람만 100명에 가깝다. 그는 총에 맞아 엎드린 사람을 가서 확인사살까지 하는 여유를 보였다. 도저히 인간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한 살 때 부모가 이혼했다. 15세가 되어 아버지와 연락을 끊었다. 어릴 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아무리 크다 해도 성인이 된 32살의 나이에 이런 끔찍한 일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수사에선 그는 이슬람권의 확장을 차단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하나 그건 이유에 불과할 것이다. 노르웨이의 이번 참사는 죽은 자와 가족들의 고통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고통임을 여실히 드러내는 한 편의 비극이다.

2007년 4월16일 버지니아 공대에선 한인 1.5세 조승희군에 의해 무고한 학생 32명이 죽고 29명이 부상을 입은 총기살인사고가 있었다. 조승희는 학생들을 사살 후 자살했다. 왜 그랬을까. 이 살인은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살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 때 죽은 학생의 가족들과 부상당한 학생들은 오늘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불경은 말한다. 생은 고라고. 생이 고라고 하는 것은 삶과 세상이 고통스럽다는 말이다. 삶이 고통이란, 즉 인간으로 태어남 자체가 고통의 시작이며 연속이란 뜻이다. 세상사는 사람치고 고통이 없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다 살아가는 것을 힘들어 한다. 더욱이 착하고 무고한 자들이 고통 받고 피해 받는 세상이 되어 더욱 세상과 삶을 고통으로 이어간다. 불경은 사람이 죽어서 다시 인간이나 다른 생물로 태어나는 것을 윤회라 한다. 불경에서 말하는 해탈은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즉 윤회를 끊은 것이 해탈이다. 죽어서 다시 태어나 윤회의 길을 걷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니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얼마나 세상이 고통스러우면 태어나지 않는 것을 해탈이라 할까.

만약의 경우 안데르스 베링 브레이빅이 어릴 때 그의 부모가 이혼하지 않았고 또 그의 나이 15살 때 아버지와 헤어지지만 않았어도 이번 노르웨이의 고통스런 비극은 없지 않았을까. 세상을 낙천적으로 본다는 것은 세상에 비극이 없을 때엔 맞는 말이다. 그러나 세상엔 비극이 끝나지를 않고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그 비극을 보고도 낙관적이 될 수 있을까. 세상을 살면서 가장 힘든 것 중의 하나는 의로운 자가 고통을 당하고 무고한 사람들이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보면서도 손 하나 까닥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이런 세상에서도 그냥 껄껄대고 웃으며 낙천적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총기가 불을 뿜고 불의가 판을 치는데도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임에도 웃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10년 전 뉴욕의 맨하탄에서 일어난 9.11사태. 3000명에 가까운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 그 가족들은 지금도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렇듯 세상의 고통은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며 계속된다. 언제까지 이런 일이 계속돼야 하나. 정말 지구의 종말이 올 때라도 되었나. 오슬로에서 일어난 한 사람의 광끼가 세계인을 슬프게 하는 것 같은 짓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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