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일을 찾는 노인들

2011-07-20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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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젊었을 때 왕창 벌어서 30-40대에 조기은퇴한 후 여생을 오래오래 즐기며 사는 것이 ‘보통 미국사람들의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예전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요즘은 오히려 은퇴한 후 일터로 돌아가는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다.노인들의 은퇴 개념은 이제 생활전선에서 완전히 물러나 집에서 손자손녀나 보는 것이 아니다. 이들에게 은퇴(retire)란 다시(re) 자동차타이어(tire)를 끼우고 새 출발을 하는 시점일 뿐이다.

평균수명이 60세 미만이었을 때는 30-40대 은퇴가 미덕이요 부러움의 대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수명이 이미 70-80세로 늘어났고 머지않아 90-100세까지 연장될 전망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노인에겐 은퇴가 고역이고 더구나 한국의 ‘명퇴’는 저주나 다름없다.

한인 노인들의 이미지도 어느새 많이 달라졌다. 할 일 없이 공원이나 해변을 거니는 노인들, 경로당에 나가 잡담하고 바둑이나 장기를 두며 소일하는 노인들도 있지만 일자리를 열심히 수소문하며 자원봉사 할 기회를 찾아다니는 에너지 넘치는 노인들도 많아졌다.하루 놀고 하루 쉬는 은퇴생활에서 삶의 가치나 성취감을 찾지 못하는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돈 있는 노인들도 일을 원하는 건 마찬가지다. 1,500만 달러의 순자산을 소유한 미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0%가 은퇴 후 일을 계속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전체 근로자 가운데 은퇴 후에도 계속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1998년 56%에서 지금은 74%로 늘어났다. 이는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은퇴가 자기 인생의 끝장이라고 생각하기보다 무언가를 향해 다시 도전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노인들의 살아있는 아름다운 생의 몸짓이요, 여생에 새로운 기대감을 불어넣는 활력소이다.중년이 지나면 내리막길이요, 인생의 오후가 시작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노인에게도 미지의 세계는 있다. 그 세계는 본인의 노력에 따라 각기 다른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늙어간다는 생각을 지우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한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그 어느 때 보다도 오늘이 가장 소중한 날이 될 수 있다. 인류문명은 지난 100년동안 과거 1,000년에 버금할 만큼 크게 발전했다. 정신문화의 변화, 세계인구의 증가, 평균수명의 연장 등도 인류역사상 전례 없는 경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노인에 대한 개념과 사회인식도 달라졌다. 가정과 사회의 폐기물이 아니라 인생의 성장기(제 1기)와 노동기(제 2기)를 지난 완성기(제 3기)라고 말한다.

특히 일에 대한 열정은 노년의 삶을 아름답고 풍요롭게 가꾸는 핵심요소다. 이 열정만 있으면 노인도 얼마든지 삶의 결실을 풍성하게 맺을 수 있다. 인류역사의 최대 업적을 일군 사람들 가운데 35%가 60-70대에, 23%가 70-80대에, 6%가 80대에 성취했다. 역사적 업적의 64%가 60세 이상의 노인들에 의해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모세는 80세에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새 출발을 감행했다. 소포클레스는 클로노스의 에디푸스를 80세 때 썼고 괴테도 80이 넘어서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미켈란젤로는 베드로 대성전의 돔을 70세에 완성했다. 베르디, 하이든, 헨델도 고희가 지난 후 불후의 명곡을 남겼다. 일본의 시바타 도요도 할머니는 100세에 시집 ‘약해지지 마’를 내놓아 100만부가 팔리면서 일본열도를 감동으로 들끓게 했다.

환갑이든, 고희든, 팔순이든 어느 나이나 인생은 살만하다. 젊은이들은 “도전이 없고, 기대하는 내일이 없는데 더 살아봤자 그저 생존하는 것일 뿐이지 않는가”라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은퇴 후 노후의 삶을 활기 있게 펼쳐가는 노인들은 “너희들도 늙어보면 알게 된다”고 일갈한다. 노인대학에 가보면 노인들이 둘러 앉아 “인생은 60부터, 아니 아니 70부터…”라며 손뼉 장단에 맞춰 노래 부른다. 그러나 기실, 노인의 인생은 몇 살이 됐던 간에 바로 지금부터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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