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평창 감격과 허장성세

2011-07-13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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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이 동계올림픽을 유치한 후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뮌헨(독일)과 안시(프랑스)를 누르고 한국의 평창이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최종 결정되자 남아공 더반에서 결과를 지켜보던 유치팀 관계자들은 물론, 국내에서도 남녀노소 구분 없이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벅찬 기쁨과 감동의 환호성을 터뜨리고 있다. 10년에 걸친 각고의 3수 끝에 어렵게 거둔 결실이어서 감격도 그만큼 더 큰 모양이다.

올림픽 유치는 그 나라의 위상과 긍지를 전 세계에 떨치는 가장 좋은 기회로 꼽힌다. 7년 후 동계올림픽을 평창에 유치함으로써 얻어지는 경제적 이익도 자그마치 8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한국 국민들이 기뻐서 펄쩍펄쩍 뛰는 게 당연하고 우리들 해외한인들에게도 너무 반갑고 신나는 소식이다. 그러나 기뻐만 할 때가 아니다. 평창의 동계올림픽 유치가 확정되기 직전 뉴 타임스가 보도한 한국의 어두운 사회상에 관한 분석기사는 우리 모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7일자 신문에서 한국인들이 과도한 노동과 스트레스, 상시적인 걱정 등에 파묻혀 있기 때문에 국가적으로 신경쇠약에 걸리기 직전이라며 이혼, 자살, 입시지옥, 폭음 등 한국사회가 겪고 있는 사회적 병폐들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이 신문은 또 한국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 폰에서부터 성형수술에 이르기까지 서구혁신 기술을 마치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 마구 받아들여 왔지만 정작 이 같은 첨단기술과 지식에서 파생되는 불안, 우울, 스트레스 등 역작용에 대한 심리치료는 거부하고 있다며 한국인들의 사고체계에 문제가 있음을 지적했다.


솔직히 허장성세라는 표현이 한국인들보다 더 잘 어울리는 민족이 또 있을까? 한국인들은 당장 내일 끼니가 없어도 남들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철저히 위장한다. 그러면서도 옆집 사람이 HDTV를 사면 자기도 빚을 내서라도 산다. 친지가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자기도 무슨 수를 쓰든지 다녀와야 직성이 풀린다. 이웃집 사람이 자녀를 해외에 조기유학 보내면 자기 자녀도 보내야 하고, 옆집 사람이 자녀를 일류대학(SYK)에 보내기 위해 비싼 과외공부를 시키면 자기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녀에게 과외공부를 시킨다.

개성이나 독창성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이 아이들도, 어른들도 경쟁적인 생활패턴에 몰입해 있다. 이런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온 국민이 내가 아니라 남의 그릇에 맞는 삶을 살다 보니 모두가 불안하고 우울하고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멀쩡했던 부부들의 이혼도 속출한다. 경쟁에서 탈락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의 자살도 꼬리를 잇고, 직장인은 스트레스를 잊기 위해 매일 폭음하며 건강을 해친다.비록 평창이 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되고 대한민국이 세계 경제 10위권에 들었다 할지라도 국민들의 심신이 이처럼 지치고 메말라 있다면 이건 심각한 문제이다. 요즘은 국민의 체력뿐만 아
니라 국민의 정신력도 국력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내면에선 썩어가고 있는데 껍데기만 화려해서 무엇 하나? 외형에 걸맞게 정신도 같이 살찌고 풍요로워야 한다.

뉴욕타임스가 지적한 한국사회의 문제점은 이곳 뉴욕 한인사회에도 그대로 투영된다. 사회의 기본단위인 가정에서 부터 문제가 심각하다. 가정문제상담기관이 최근 밝힌 2011년 상반기 상담 분석에 따르면 배우자의 신체적, 정신적 학대로 인한 부부불화 및 부모-자녀간의 갈등이 매우 심각한 상태라고 한다. 총 상담건수 776건 중 부부불화가 34%인 264건이었고 부모 자녀 갈등도 전체 62건의 청소년문제 상담 중 21건이나 됐다. 가출과 성폭행이 각각 8건에 10대 임신도 5건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가정의 붕괴현상은 한인사회가 그동안 어렵게 일군 경제성장을 무색케 할 뿐 아니라 앞으로의 커뮤니티 발전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가정이나 사회가 제대로 존속되려면 그 구성원들의 정신적 혼부터 견고하게 유지돼야 한다.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정신력을 잃은 나라는 일찍이 패망했고 그 역사와 문화도 소멸됐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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