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래가 보인다

2011-07-06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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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한국이 좀 잘 살게 되자 “기회의 땅은 미국이 아니라 한국”이라며 우쭐대는 사람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한국은 아직 기회의 땅보다는 투기의 땅에 가깝다. 아직도 미국이 기회의 땅이라는 명백한 증거는 경제전문지 포천이 선정한 2011년 미국 500대 기업 가운데 41%가 이민 1세나 그 자녀들이 설립한 기업이라는 점이다.

포천의 ‘뉴 아메리칸 500’ 보고서에 의하면 500대 기업 가운데 이민자와 그 자녀들이 설립한 기업이 모두 204개로 거의 절반에 달했다. 이런 놀라운 성취에 대해 포천은 새로운 땅, 새로운 환경을 맞아 위축하지 않고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는 도전정신이 바로 이민자들의 기질이며 그 기질이 자녀들에게 그대로 전수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민자들이 실제로 미국경제에 기여한 공로는 포천의 500대 기업 분석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방대하다. 대기업이 아닌 일반 이민자들이 미국의 경제발전에 음으로 양으로 끼친 공로는 시시콜콜 다 거론할 수 조차 없다. 포천의 지적대로 이민자들이 거둔 성공의 원동력은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죽을 각오로 앞만 향해 달린 도전정신이다. 바로 그 도전정신에서는 한인 이민자들이 다른 어느 이민집단보다도 강인하다고 할 수 있다.


손에 쥔 것도, 기반도 전혀 없는 척박한 남의 땅에 이민 온 한인들은 ‘하면 된다’는 도전정신 하나만을 무기로 삼고 험난한 이민의 삶을 개척했다. 그 결과 짧은 이민연륜에도 불구 한인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났고 괄목할만한 경제성장도 이루었다. 주류사회 각 분야에 걸쳐 2세들의 진출도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들이 모여 만든 나라이고 이민자 때문에 돌아가는 나라다. 어느 이민집단이든 정치, 경제, 교육 등 특정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궁극적으로 그 분야를 주도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미국의 정치, 경제, 금융, 언론 등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유대인들의 파워가 좋은 예이다.

포천의 500대 기업 창업자 뿐 아니라 어느 이민자든 노력만 하면 어떤 분야에서건 미국을 리드할 수 있다. 미국이 ‘이민자들의 천국’이나 여전히 ‘기회의 땅’으로 불리는 이유는 바로 이 같은 맥락에서다.한인 1세들이 2세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귀중한 유산은 바로 그 억척같은 도전정신이다. 그 후세들이 이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열심히 노력하면 유대인들처럼 주류사회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한인들이 얼마든지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벌써부터 미국의 미래는 소수민족, 즉 이민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한인도, 비록 지금은 힘이 미약하지만 이제부터라도 잘만 하면 얼마든지 미국을 좌지우지하는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다. 이미 1세들의 강인한 도전정신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2세들이 주류사회 곳곳에서 실력과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모습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브루킹스 연구소가 2010년 센서스 통계를 분석한 결과 2세미만의 영아 중 소수계가 51%로 사상 처음으로 백인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2년 전 아메리칸 커뮤니티 서베이가 실시한 연구조사에서 백인 영아가 51%로 소수계를 앞질렀던 것과 비교하면 미국의 인종분포가 엄청난 속도로 바뀌어 가고 있음을 실감케 한다. 소수민족이 주류가 된다는 건 한인들에겐 매우 고무적이다. 소수민족인 우리도 얼마든지 이 땅에서 중심집단으로 뜰 수 있는 기회가 코앞에 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미국을 주도적으로 리드해나갈 수 있는 시대가 임박했다는 뜻이다. 한인들이 제2의 도전정신으로 이 땅에서 주인의식을 당당하게 발휘하면서 이민초기보다 더 악착같이 살아야 할 때가 되었
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인들은 그동안의 성취에 자만한 탓인지 나태해진 느낌이다. 오히려 다른 소수민족들이 한인들을 앞질러 뛰고 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는 제2의 도전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그래야만 이민 100주년 때 거둔 열매보다 훨씬 더 큰 열매를 200주년 때 거둘 수 있을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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