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마음꽃 싹이 자란다

2011-07-05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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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교육가)

물이 든 종이컵이 마루바닥에 떨어졌다. 어린이들이 그 둘레에 모였다. 제니가 재빠르게 휴지 한 뭉치를 가져와 쏟아진 물을 닦았다. 옆에 서있던 세진이가 종이컵을 쓰레기통에 넣고 어린이들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 때까지 멋쩍게 서있던 데니가 작은 소리로 “땡큐”라고 한 듯, 교실은 제자리를 찾았다.

각자가 좋아하는 동물을 그리고, 그에 대한 설명을 쓰기로 하였다. 민호가 “나 크레용 없어요”전에도 몇 번 같은 말하는 것을 들어왔다. “내가 빌려줄게”두서너 명이 소리치며 크레용 곽을 들고 그 쪽으로 간다. 크레용뿐인가. 연필이 없다는 어린이가 있다. “이걸로 써” 애라가 제 연필을 내주고, 자기 가방 속에 깊이 넣었던 필통 속에서 연필을 꺼낸다. 여기는 6살, 7살
어린이가 모인 한국어 교실이다.


필자는 아무 설명 없이 착한 일을 한 어린이들에게 스티커를 하나씩 준다. 그들은 ‘나는 자라는 나무’라고 쓴 나무그림에 그것을 붙인다. 그 나무가 꼭 차려면 서른 번 착한 일을 해야 한다. 어느 날 간식시간, 어린이들이 줄서서 간식을 탄다. 혜미 차례인데 “나, 아빠”를 연발하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도넛을 가리킨다. 나는 혜미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애썼다. “아빠가 어디 계신
데? ”내 물음에 혜미가 손가락으로 교실 밖을 가리킨다. “이 도넛을 아빠한테 드리고 싶어?”혜미가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도넛과 작은 물병을 혜미에게 주었다. 조금 있으니까 혜미아빠가 오셨다. “얘가 이걸 가져왔는데...”“혜미아빠, 혜미의 예쁜 마음을 받으세요” 내 말을 듣고 그 분은 자리를 뜨셨다. 혜미는 어린이들이 늘어선 매 끝에 서 있었다. 우리 교실에 이
렇게 예쁜‘어린 심청’이 있음을 발견한 날은 하늘이 더 파랬다.

어린이들이 다른 교실로 가서 공부할 때는 제각기 짐을 들고 가게 된다. 그 짐이 제법 많다. 남자들의 태권도복, 여자들의 한복, 거기에 각자의 덧옷, 비오는 날의 비옷...등이 있다. 어떤 학생은 아예 공항에서처럼 여행용 가방을 끌고 다닌다. 그런데 걱정 안 해도 된다. 그들이 서로 도와가며 이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어린이들의 세계를 눈여겨보면 퍽 재미있다. 항상 다른 친구들의 도움이 꼭 필요한 어린이, 친구들 돕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어린이, 다른 친구를 돕지도 않고 도움을 받지 않는 어린이, 남을 돕는 일에 전연 관심이 없는 어린이...등 마치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은 현상이 어린 시절부터 확연히 보인다. 본인이 타고난 DNA와 달리 이런 현상들은 주위 사람들의 관심, 격려, 칭찬으로 바뀔 수 있다고 본다. 가끔 어린이들의 선행을 알려드리면, 그것보다 공부를 잘 하길 바라는 부모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가정교육의 목표도 우수한 성적내기, 성공하기, 부자 되기...등이 된다. 이와 같은 것들이 일차적인 목표일까. 무엇보다 인간의 기본적인 것이 목표가 되길 바란다.

사랑하기, 친절하기, 서로 돕기...등의 중요함을 깨닫고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는 일이 아닐까.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런 기본적인 것을 깨달아서 실천할 수 있는 기초를 닦는 것이 교육이라고 본다. 삶이 다른 사람과의 싸움터이고, 거기서 이기지 않으면 살 수 없고, 남보다 부자가 되지 않으면 편안히 살 수 없다는 인식을 어린이들에게 주고 싶지 않다. 그 이유는 이 세상이 타인과의 경쟁터가 아니고, 서로 도우며 사는 즐거운 곳이기 때문이다.

생존경쟁이란, 인간성의 토대 위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형태이지 결코 삶의 목표는 아니다.이렇게 인식하고 어린이들에게 세 가지 열쇠를 준다면 무엇이 될까. 즉 어린이들이 마음꽃을 피우도록 돕고 싶다. 그것은 바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가 될 것이다. 자녀들의 마음꽃 특색은 계절에 관계없다. 열매의 모양과 맛이 다양하다, 마음꽃은 각 개인의 일생동안 핀다. 마음꽃은 세계인의 친구가 되어 넓은 세상에서 숨쉰다. 마음꽃의 필요한 비료는 그들이 어렸을 때 주위 사람들의 인정, 칭찬과 격려를 충분히 받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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