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북전쟁과 링컨 리더십

2011-06-29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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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만 (목사)
금년은 남과 북의 분열의 위기를 딛고 미합중국을 만들어 낸 남북전쟁이 발발한지 15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유명한 전쟁 유적지 마다 전쟁 150주년 행사로 분주하다. 1861년부터 1865까지 4년동안 치열하게 계속되었던 전쟁으로 무려 62만 명이 전사했다. 이 숫자는 미국이 20세기에 들어와 참전한 5대 전쟁(1차, 2차 대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중동 전쟁)의 전사자 합계보다 훨씬 더 많다.

남북전쟁의 원인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미국 근대사 뿐만 아니라 남북 간, 계층 간 분열이 심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남북전쟁이 북부에서 선포한 노예해방으로 인하여 야기된 것이라는 항간의 주장은 사실과 멀다. 남북전쟁의 실제 원인은 국가 형태에 관한 의견 대립 때문에 야기되었다고 보는 “연방전쟁론(The Union War Theory)”이 옳다.이렇게 보면 남북전쟁은 사상전이었다. 북부의 연방제(Unionism)와 남부의 분리제(Secessionism)가 서로 팽팽하게 대립하다가 남부군이 북부군의 섬터 요새를 무차별 공격한 것을 빌미로 해서 기나긴 내란의 막이 열렸다.

남북전쟁의 타당성을 국민에게 설득하고 이끌어간 주역(主役)은 강력한 연방주의였던 링컨이다. 링컨은 미국이 남과 북으로 분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쟁 중 노예해방을 선포하고 남북전쟁을 확신있게 주도했다. 그러나 막상 전쟁이 터지자 인구나 국력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한 북부가 처음부터 밀렸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한 것이다. 지휘관의 부재가 북부의 문제였다. 남군에는 로버트 리(Robert Lee)라는 전설적인 지휘관이 바위처럼 버티어 서서 남부 연합을 결속시켰으나 북군에는 그런 지휘관이 없었다. 현재 우리나라 국방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가. 존경받는 야전 지휘관이 없다는 것이다.


지휘관 부재에 대한 고민으로 링컨은 수없이 무릎을 꿇고 하나님에게 훌륭한 야전 지휘관을 보내 달라고 기도했다. 마지막에 찾은 인물이 율리시즈 그란트다. 그 당시 그란트는 이미 지휘관으로 실패한 후 낙향하여 무의도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링컨은 그란트의 현재 모습 보다는 앞으로 실패를 딛고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열렬히 헌신할 미래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그를 선택하였다. 과연 링컨다운 모험이며 결단이다. 폐인 같았던 그란트가 링컨의 신임을 받아 지휘관이 되자 완전히 딴 사람이 되었다. 포트 도넬슨 전투를 위시하
여 싸우는 전쟁마다 승승장구하며 링컨의 기대에 부응하였다. 링컨의 인재 발굴 능력은 패전이 짙어가는 전쟁 중에 큰 빛을 발했다.

링컨은 강경주의자들의 치열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쟁 중 포로로 잡은 남부 대통령 데이비스와 패전 사령관 리 장군을 아무 조건 없이 사면하고, 남은여생을 대학 총장으로 일 할 수 있도록 관용의 길을 열어 주었다. 온국민은 이런 링컨의 리더십에 열광했다.링컨의 대 화해와 관용은 어디서 나왔는가. 성경에서 나왔다. 난세의 탁월한 리더였던 링컨은 성경의 복음정신으로 분열 직전의 나라를 구했고, 미국이 세계 강국으로 도약하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미천한 가문의 역경을 뚫고 올라온 용수철 같은 믿음과 투지력, 그리고 엄청난 고난과 시련을 탁월한 리더십으로 승화시킨 지혜와 능력은 그가 평소에 쌓아 올린 신앙의 소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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