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도심 속의 오아시스가 사라진다

2011-06-23 (목)
크게 작게
박원영(경제팀 차장대우)

주식 한 주도 갖고 있지 않은 기자가 엊그제 월스트릿저널에 실린 한 주식 관련 기사에 눈이 저절로 갔다. 반즈 앤 노블(Barnes&Noble)의 주가가 수익 감소로 또 다시 급락했다는 기사였다. “아, 이러다간 보더스에 이어 정말 반즈 앤 노블도 문을 닫겠구나”하는 걱정이 드는 것이다.

괜히 남의 회사 걱정하는 게 아니다. 바로 지난 주말엔 대형 서점이 없어짐으로 해서 ‘직접적인 고통’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업타운 근처를 걷다가 갑자기 요의를 느껴 링컨센터 인근 반즈 앤 노블로 급히 발걸음을 옮겼는데 어느새 문을 닫은 것이었다. 3층 높이의 유서 깊은 그 빌딩엔 대형 옷가게가 들어설 예정이다. 또 옷가게다.


뉴욕에서 공부한 대학후배가 했던 우스운 얘기가 있다. 이 친구가 대장기관이 상당히 부실해서 조금만 찬 걸 먹거나 술을 마시면 대번 설사를 했다. 집이 대치동이었던 후배는 신촌의 학교까지 ‘좌석버스 12번’을 주로 이용했는데 강북과 강남을 통과하는 노선에 있는 수십개가 넘는 정류장에 한번씩은 다 내려봤다는 것이다. 급하게 화장실을 가기 위해서다.

거리의 어느 상가 건물에 들어가도 층마다 문 열린 화장실이 있던 한국이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그 후배는 한 때 화장실을 쉽게 찾을 수 없는 맨하탄 거리에 오래있는 것 자체가 겁이 났다고 한다. 뱃속이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인 기자에게 대형서점들은 뉴욕시내에서 급할 때 가장 편안하게 들릴 수 있는 장소였다.

농담처럼 상큼하지 못한 예를 들었지만 불과 7~8년 사이 서점과 레코드점, 비디오점 등 뉴욕시의 대형 문화 공간들이 급격히 없어지는 것은 정말 안타깝다. 아마존 판매량이 기존 서점의 몇배에 이르고 전자책이 불티나게 팔리고 노래와 영화는 거의 다운로드받는 환경이다. 맨하탄에 엄청난 렌트비를 내고 매장을 열어 문화 상품을 판매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노호의 타워레코드점과 비디오점, 이스트빌리지의 킴스비디오, 6애비뉴 23가의 반즈 앤 노블, 유니언스퀘어와 타임스퀘어의 버진레코드, 파크애비뉴 57가와 2애비뉴 34가의 보더스 그리고 링컨센터 반즈 앤 노블까지 우리가 즐겨 이용하던 공간들이 차례차례 사라졌다.

요즘처럼 더울 때 혹은 추울 때, 비올 때 아니면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을 때, 대형서점은 커피 한잔으로도 몇 시간씩 쾌적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도심속의 오아시스였다. 아니, 단지 시간을 보내는 곳이 아니었다. 최신 잡지와 신간 서적을 읽고 새로 새 음반들을 들어보고 현재 뉴욕에서 향유되고 있는 최첨단의 문화 트렌드를 맘껏 느껴보는 공간이었다. 이 공간들이 대부분 화장실도 없는 패스트 패션 옷가게들로 바뀌어가고 있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