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 아버지

2011-06-1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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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논설위원

오는 19일은 파더스 데이(Father’s Day)다. 아무런 느낌없이 있다가 TV, 신문의 파더스 데이 광고, 이메일로 날아드는 각종 홍보물로 인해 아, 이번 주가 아버지날이구나 한다,이렇게 아버지는 우리에게 거의 존재감이 없다. 다소 푸대접을 받고 있다. 불과 한 달전, 5월 두 번째주인 8일 마더스 데이(Mother’s Day)에는 꽃과 화장품, 옷과 보석 마켓팅이 홍수처럼 넘쳐나 일찌감치 마더스 데이가 왔구나 했었다.문학적으로도 어머니에 관한 시나 소설, 수상집은 많지만 아버지에 대한 시나 수상집은 극히 드물다. 한 가정에서 극히 필요한 중심이면서 늘 뒷전에 조용히 머물러 있다. 이렇게 안보이는 울타리이자 든든한 배경인 아버지의 노고는 우리에게 늘 잊혀진 존재이다.

그나마 일년에 한번 아버지날이 오면 그때서야 사람들은 허겁지겁 우리의 아버지를 돌아보게 된다. 우리에게 아버지는 어떤 존재일까? 이민 1세로서 낯선 땅에 자리잡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는 아버지, 경제위기가 닥쳐도 가족들 앞
에서는 아무 어려움이 없는 듯, 든든한 기둥인 척 하느라 속이 시커멓게 탄 것은 아닐까. 가장으로서 자존심과 체면이 가족에게 조차 손을 내밀지 못하다보니 더욱 고독하고 외로운 것은 아닌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던 아버지를 소개한다. 어느 마을에 세계적인 소프라노 가수가 오랜 해외 순회공연을 마치고 귀국 독창회를 열기로 했다. 많은 팬들은 그의 목소리를 듣기위해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막상 공연을 알리는 벨이 울리자 사회자가 뛰어나와 비행기가 연착되어 그가 늦는다고 전했다. 대신 신인 가수가 나와 노래를 들려준다고 하자 청중들은 몹시 실망을 했다. 잠시 후 사회자가 소개한 가수가 무대에 나타났고 그는 최선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기다리던 가수가 안와서 차갑게 변한 청중들은 노래가 끝나도 아무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그때였다. 갑자기 극장의 2층 출입구에서 한 아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빠, 정말 최고였어요!”이 소리를 들은 신인가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그 아이를 쳐다보았다. 조명에 비친 그의 눈에는 그렁그렁 고인 눈물이 반짝였다. 몇 초가 지났을까. 얼음처럼 차가왔던 청중들의 얼굴에 따스한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가 오랫동안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그 신인가수가 바로 루치아노 파바로티이다.

루치아노 파바로티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하우스 무대에도 자주 서며 뉴요커에게 파바로티 바이러스를 전파했다. 그는 2007년 췌장암으로 71세 나이에 별세, 고향인 이태리 북부 모데나의 가족 묘지에 아마추어 테너였던 제빵사 아버지와 어머니, 아들 옆에 묻혔다.그 아이(일찍 죽은 아들인지, 첫째부인이 낳은 딸인지 분명치않다)의 격려가 아버지에게 깊은 용기와 사랑을 주었고 무대의 분위기를 역전시켰다.인생을 살다보면 누구에게나 의기소침하고 자신감을 잃는 경우가 생긴다. 이럴 때 가장 소중한 도움은 가족의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오는 격려다. 아마도 평생을 파바로티는 아이의 “아빠, 정말 최고였어요” 하는 그 목소리를 생각하며 해외공연차 공항으로 가는 택시안, 비행기, 공연장 대기실에서도 발성 연습을 계속하여 평생 ‘20세기 세계 최고의 테너’로 군림했을 것이다.

우리 아버지는, 내 아이의 아버지는 어떤가? 그들의 숙인 고개와 처진 어깨에 연민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번 아버지날은 우리 아버지와 내 아이의 아버지 어깨를 당당하게 펴주는 날로 만들자. 가장 좋은 선물은 따스한 위로와 진심어린 격려일 것이다. “돈 많이 못 벌어도 돼, 건강만 지켜”, “내가 열심히 돈 벌게, 아빠는 골프만 쳐.” 등등, 립 서비스로 끝내지 말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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