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학생의 장례식

2011-06-0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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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혜(동서국제학학교 교사)

참 안타까웠다. 17세의 한창 나이에 죽다니, 그것도 암으로... 아직 꽃도 피우지 못한 채 우리 곁을 떠난 한 한인학생의 장례식은 자마이카에 있는 흑인 교회에서 치루어졌다. 자리에 앉아서 보니 강단 앞 스크린에 그의 생전의 사진들이 돌아가며 나오는데, 그와 내가 둘이 찍은 사진, 내가 찍어준 그의 독사진, 그리고 코리언 퍼레이드에서 참가 학생들과 찍은 단체사진이 그의
유일한 학교생활 사진이었다.

장례식은 12학년 전교 학생들 거의 다 왔다고 착각할 정도로 학생들이 예배당을 가득 채웠다. 민감한 청소년들이 친구 잃은 슬픔을 억제 못하여 오열하는 소리가 문득 문득 들려왔다. 몹시 흐느끼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니 한 교사가 울부짖는 한 학생을 부여잡고 진정시키고 있었다. 그는 특별한 학생이었다. 일본어를 배울 때는 물론, 코리언 퍼레이드에 3년 연속 참가를 했던 학생이었다. 키가 큰 학생이라 매년 한국 국기를 높이 들고 가는 일을 맡았었고, 누구보다 책임감이 있고 남을 돌보기를 좋아하는 학생이라서 저학년 학생들을 지켜보는 일도 담당했다. 그는 지난 코리언 퍼레이드때 참가하고 돌아오는 학교 버스 안에서 몸이 안 좋다고 한 후 팔과 다리에 암이 퍼져 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한 달 후 병원에 입원해서 방사선 치료를 받게 되었다. 나는 날씨가 아주 쌀쌀한 토요일 오후 맨하탄에 있는 병원으로 그의 병문안을 갔다. 그가 팔에 링거를 꽂고 몇몇 학생들과 힘겹게 담소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아플 때 위로가 되겠지, 또 전도하게 되면 전도도 해야지” 하는 마음으로 복음 성가 CD 2장과 그가 좋아했던 쵸코파이 한 상자를 들고 갔다. 사실 그에게 하나님에 대해 한 번도 얘기해 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염려하는 마음도 들었었다. 관 속에 누워있는 그를 바라보며 “나는 네가 지금 하나님 팔에 안겨 있는 것을 믿어. 네가 보고 싶을 거야. 그리고 너는 우리들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야! 라고 하며 말을 마쳤다.마지막 순서로 그의 젊은 엄마가 단상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들의 마지막 때를 회상하면서, 그가 매일 엄마와 같이 성경을 읽는 것을 빼놓지 않았다고 했고 청중에게 부탁이 있다고 하였다.

그의 엄마를 주목하고 있는 우리 모두를 향하여 그녀는 말했다. “절대 울지 마세요! 우리 아들은 지금 빈껍데기만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아픔이 없는 좋은 곳에 있고, 하나님이 허락하는 그의 생을 다 살고 갔습니다. 그러니 절대 울지 마세요! 그러니 우리는 감사해야 합니다.”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그 젊은 어머니의 말이 계속 귓가를 맴돌았다. 누구보다도 슬픔을 가눌 수 없을 그녀가 자신에게 뇌이고 또 뇌었을 그 단어들을.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장례식은 슬프지만, 또 그렇게 슬프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한편으론 잔잔한 위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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