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두 종류의 이빨

2011-06-0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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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윤 태 시인

짐승들에게는 한 이빨만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두가지 종류의 이빨이 있다. 보이는 이빨과 보이지 않는 이빨, 보이는 이빨은 입안에 있고 보이지 않는 또 다른 이빨은 마음속에 있다. 이빨이 하는 일이란 씹는 일이다. 입속의 이빨은 음식을 씹어 잘게 부수어 소화에 도움이 되고 씹는 동안 맛이 우러나 그 맛을 즐기기도 한다. 씹는 일은 수명과도 관계가 있어 오래 살고 싶으면 오래 씹으라고 의사들은 사람들에게 권한다.

제대로 씹지 않고 넘기면 소화에도 부담을 주지만 그 음식이 무슨 맛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니 있는 재미마저 놓치고 만다. 음식을 오래 씹으면 씹는 재미도 있고, 오래 씹을수록 우러나오는 맛으로 음식의 참 맛을 즐길 수도 있으니 오래 씹고 볼 일이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씹는 데에는 남모르는 쾌감이 있다. 그래서 씹고 또 씹는다. 그러나 음식을 씹는 데에는 여러모로 재미도 있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만 마음속에서 남몰래 씹는 일이 있으면 씹고 씹어도 씹는 재미가 없이 불쾌할 뿐만 아니라 심하면 살맛조차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
니 이것저것 씹을 거리가 마음속에 많으면 건강에도 좋지 않다. 다시 말해서 씹을 거리가 많은 입은 행복하고 즐거우나, 씹을 거리가 많은 마음은 남모르게 쑤시는 데가 많아 불행하다.

봄여름에 나는 생풀이나 겨울에 먹는 건초를 소화시키려면 소는 좌우로 이빨을 갈면서 자꾸 씹어야 하는데 먹기 좋고 목으로 넘기기 좋은 사료를 얻어 먹다보니 씹을 일이 별로 없는지 침을 흘려가며 좌우로 씹는 소의 모습이 점점 사라져 간다. 소의 즐기는 입맛을 빼앗아 간 것이다. 마음속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속상하고 억울한 일 때문에 얼굴색이 이상하게 변하면서 씹어야 하는 일이 씹지 않아도 될 소처럼 만큼 가벼웠으면 좋으련만...


사람 사는 곳이면 으레 씹는 소리가 나게 마련이지만 한국 어느 도시나 시골 사람들 보다도 미국의 대도시나 작은 도시에서 사는 한국 사람들은 고향을 떠나 가슴속에 답답한 것이 많이 쌓여서 그런지 모였다 하면 화제의 대부분이 슬쩍슬쩍 남을 씹어대는 이야기다. 씹을 일도 아닌데 씹기 좋게 살을 덧 부쳐 가면서 흥을 돋우려 한다. 세상에는 씹을 사람도 없거니와 씹힐 사람도 없다. 모든 것이 상대성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못 했으면 너도 잘못했고 내 잘못이 반이면 네 잘못도 반이다. 식당에 가서 밥을 먹으려면 무심결에 들려오는 옆 자리 사람들의 씹는 소리 때문에 밥맛을 잃는 때가 자주 있다.

교회의 신도가 자기네 목회자를 씹는 소리, 주일이면 가장 선한 얼굴 표정으로 인사를 나누면서도 신도가 신도를 씹는 소리, 장사하는 사람이 장사하는 이웃을 씹는 소리, 친구라는 사람이 친구를 씹는 소리, 동료라고 하는 사람이 동료를 씹는 소리, 나이든 부인들이 모여 앉아 남편 씹는 소리, 남편이 아내를 씹는 소리, 학생이 선생을 씹는 소리,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 대통령을 씹는 소리, 회장으로 뽑아 놓고 회장을 씹는 소리, 귀를 기우려 들어보면 온통 씹는 소리뿐인 것 같다.

씹는 소리 말고 뭐 좀 흥이 나고, 뭐 좀 꽃 같은 소리는 없을까? 산속에서 사는 내 귀에도 씹는 소리가 바람타고 들려온다. 씹다가 간 사람들, 그 마음속의 이빨들은 성하게 남아 있을까? 결국은 시간 앞에 또 무릎을 꿇고 갈 사람들, 이조 오백년이 씹는 소리로 가득하더니 결국은 망하고 말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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