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회의 직분

2011-05-27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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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영(자유기고가)
개신교에서 천주교에 대해 다른 의견을 가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을 우상화 했다는 것이다. 교황을 비롯해 추기경, 나아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예수의 제자들까지 우상화해서 기독교의 근본인 인간 자체의 본질을, 즉 모두가 하나님 앞에 똑같은 죄인이고 평등하다는 사실을 잊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상을 만드는 일에는 개신교도 뒤지지 않는다. 대형교회의 목사, 직분자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중소형 교회의 직분자, 목회자, 그들은 알게 모르게 천주교의 그것 이상으로 우상화 되어 간다.

사회에서 물질, 학력, 권력 직위로 인해 나뉘어지는 구별이 교회에서는 더욱 활발히 이루어진다. 사회에서의 상대적 박탈감으로 인하여 혹은 그 반대로 사회에서의 지위의 연속성을 위하여 교회 안에서 구별을 만들어 간다. 의미가 바랜 직분자 선출, 변형된 봉사, 헌신 등을 통해 구별된 계급을 주고 받는다. 성도의 본질을 잊어간다. 사회 속에서의 명성, 지위가 그대로 교회 속에 들어오고, 교회의 직분을 사회로 갖고 나가 자랑하기도 한다. 직분자 선출시 사회의 타락한 모습을 그대로 보이기도 한다. 우스꽝스런 선거운동에다 당선된 자는 돈을 상납해야 하는 교회도 있다. 직분을 갖게 되면, 스스로 위험과 권위를
갖는다. 행여나 누군가가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해주지 않으면 상처도 입는다. 존경과 사랑으로 자연히 높아지는 것도 두려워하고 끊임없이 낮추어야 한다. 바울과 베드로가 군중들에게 신으로 칭송되어짐을 지극히 두려워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받은 직분을 자신의 믿음과 행위로 당연히 얻은 것이란 생각, 그로 인해 높아진 마음속에는 두려워할 부분은 이미 사라져 버린다. 그런 이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참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초대교회의 직분 배정은 오직 일의 분담이었고, 그 직분자들은 진정으로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고, 믿음이 출중하고 경건한 이들이었다. 미국 침례교에는 아예 직분자가 없다. 어느 한국 교회에서도 그 제도를 본받아 실행하였으나 결국 실패하고, 직분자 선출을 재개하였다.
무엇인가를 위해 일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게급장을 바라는 것은 하나님께 그 일을 바친 것이 아니다. 자신을 위해 한 일이다.

교회를 위하고, 가난한 이, 병든 이들을 위해 구제를 하고 봉사하여도, 그 대가를 은연중에 바란다면 결국 하늘에는 아무 것도 쌓이지 않을 것이다. 직분은 계급장이 아니다. 교회 안에서 결코 온전할 수 없는 인간을 인간이 높이는 일은 모두에게 힘든 일이다. 하나님이 높여준 인간은 모두에게 유익하다. 그는 겸손한 자일 수 밖에 없고, 스스로 낮아지는 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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