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의 눈/ 오 마이 코리안 델리

2011-05-2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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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영(경제팀 차장대우)
코리아소사이어티가 지난 12일 ‘마이 코리안 델리’(My Korean Deli)’의 저자 벤 라이더 하우를 초청한 북 카페 행사를 열었다. ‘마이 코리안 델리’는 브루클린의 델리를 한인 장모와 함께 운영했던 저자의 사연을 코믹하게 기술한 책으로 각종 리뷰에서 호평을 받으며 아마존에서도 높은 순위에 올랐었다.

보스턴 상류층에서 곱게 자랐고 문학잡지의 편집장이던 인텔리 백인이 델리 업주가 된 것 자체가 흔한 일은 아니다. 발단은 그가 한인 변호사 아내와 함께 스태튼 아일랜드의 처갓집 지하실에 들어간 것이다. 집을 마련할 때까지만 잠시 거주한다는 계획이었지만 막상 돈이 좀 모이자 아내는 다른 제안을 한다.

이민 온 후 평생 자식들을 위해 고생만 한 부모를 위해 가게를 마련해드리자는 것. 마침 잡지사 일에 염증을 느끼고 있던 저자는 “델리라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다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는 의욕으로 브루클린의 한 가게를 인수한다. 이후 저자는 델리를 운영하면서 손님들로부터 ‘한국의 마이크 타이슨 할머니’로 불렸던, ‘밤송이도 까라면 깐다’를 인생 모토로 하는 터프한 장모의 막강한 생활력(그리고 장모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많은 한인 소상인들의 근면함)에 커다란 감명을 받는다.

북카페 행사에서 저자는 왜 뉴욕의 청과, 델리 업종에 한인 이민자들이 그렇게 많은 것 같냐는 질문에 “언어 장벽 그리고 한국에서의 경력과 학력이 이곳에서는 이어질 수 없는 여건 때문”이라고 정확히 분석했다. 이창래의 첫 번째 장편 ‘네이티브 스피커’에서 주인공의 아버지도 ‘한국 최고의 학부를 나왔지만’ 청과상으로 이민 생활을 시작했다. 늘 지친 모습으로 들어오는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묻자 주인공의 엄마는 “그런 건 묻지 마라. 분명한 건 네 아버지는 지금 하는 일을 할 사람이 아니지만 너를 위해 고생하고 있는 거란다”고 꾸짖는다.


잡지사 기자 시절과는 전혀 다른 세계로부터 받은 문화적 충돌과 그 속에서 되찾게 된 삶에 대한 열정을 시종일관 경쾌한 목소리로 얘기하던 저자는 다소 심각한 어조로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당국의 단속을 지적했다. 도대체 웬 규정과 단속 사항이 그렇게 많으냐며 혀를 내두르는 것이다. 아마도 델리라는 장소를 커피와 샌드위치를 사는 장소로만 알고 평생을 지냈을 백인이 우연히 업주가 되어 가장 절실히 알게 된 것은 장사가 힘들다는 평범한 진리와 함께 ‘뉴욕시는 힘없는 소상인들을 정말 못살게 군다’는 사실이었을 것이다.

요즘 기가 찰 정도로 단속과 벌금이 심해지자 소상인들 사이에선 ‘애비뉴 선상 가게는 (벌금으로)1년에 1만달러, 스트릿 선상은 5,000달러’라는 말까지 있다고 한다. 많이 배웠건 아니건, 돈이 있건 없건 자식들 키우고 이민 생활 자리 잡는 방편으로 유용한 직종이었던 델리, 청과, 수산, 세탁 등의 업종이 이제는 예전만큼 뛰어들기도 이끌어나가기도 만만치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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