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냥 즐기자’ 모임의 값

2011-05-23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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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병렬 (교육가)

나무에 녹색이 피는 5월은 행사가 풍성하다. 그 중에 ‘제25회 어린이예술제’가 있었다. 이 모임이 본래 뜻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내용을 가지게 되었음은 참가자들의 노력을 말한다.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한국학교들이 어린이날을 중심으로 한 자리에 모여 즐겁게 지내기로 한 것이 행사의 목적이다. 그 동안 매년 20교 내외 학교들의 3,4백명 어린이들이 이에 참가하였다.

어린이예술제 창설 모임에서 오랜 시간의 토의가 있었던 것은 모임의 성격이었다. 즉 개인이나 단체의 연기나 기능을 겨루는가, 아닌가를 정하는 일이었다. 결론은 그런 것을 떠나서 ‘그냥 즐기자’는 결론을 얻었다. 그 이유는 참가 종류가 다채로울 것을 예상한다면, 그 개별적인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또 참가교의 학생들이나 교사들의 정신적인 긴장은 피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냥 즐기자’는 무슨 뜻인가. 마음껏 즐기자, 실컷 즐기자, 편안하게 즐기자, 너도나도 함께 즐기자는 뜻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긴장도가 약하지 않은가, 심심하지 않은가, 우수하다거나 열등한 것을 구별하는 힘을 키울 수 없지 않은가...등의 반대가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예술제 현장의 분위기를 본다면 이런 것들이 쓸데없는 염려였음을 깨닫게 된다. 경쟁이 없어도 출연 학생들은 최선을 다 하고, 구경하는 학생들은 각자의 판단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날이 사회가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극심한 생존경쟁으로 변하였다. 나라도, 사회도, 개인도, 모두가 경기장에서 힘껏 뛰고 있다. 경기에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 생존 경쟁은 물질적인 것, 기능적인 것, 눈에 보이는 것, 손에 만질 수 있는 것은 발달시킬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이나 느낌에는 어떤 영향을 주고 있을까.

어린이들에게 ‘그냥 즐기자’는 모임이나 시간을 주고 싶다. 어쩌면 이런 모임이 실질적인 ‘머리와 손’의 생산력을 촉진하는 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놀이’는 어린이들의 생활이다. 유치원에서 어린이들을 놀리기만 한다고 불평하는 부모들은, 어른들이 공장에서, 직장에서 일만 한다고 불평하는 것과 똑같다. ‘놀이’는 어린이들의 생활이다. 이 생활을 통하여 어린이들은 생각하고, 느끼고, 배우고, 만들어 낸다.

‘어린이예술제’에서 어린이들은 어떻게 즐기나? 여러 학교가 모이니까 재미있다, 학교마다 배우는 것이 다르다, 각 학교가 같은 학과도 다르게 배우고 있다, 우리도 저런 것을 배우고 싶다, 우리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연습을 많이 한 학교와 그렇지 못한 학교는 차이가 난다. 다음에는 저런 것을 하고 싶다...등. 그냥 즐기면서도 배운 것은 많다. 이 행사는 성장하였을 때의 큰 성공을 위한 즐거운 놀이판이 되고자 한다.

어린이예술제 참가교마다 큰 트로피와 참가 상품을 탔다. 모두 똑같지만 그들은 기뻐하였다. 모두 즐거운 얼굴이었고, 불평하는 얼굴은 없었다. ‘그냥 즐기자’의 결과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만일 이것이 경연대회였다면 승자 패자, 기쁜 얼굴과 슬픈 얼굴, 큰 상품과 작은 상품...등으로 갈렸을 것이다.세상에는 ‘그냥 즐기자’는 모임과, 기능이나 각종 힘을 겨루는 경연대회가 있어 다행이다. 각자는 어느 모임에도 참가할 수 있는 자유가 있고, 각종 모임은 제각기 뚜렷한 목적이 있다. 우리는 선택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상이 넓은 만큼 내 자유도 넓다.

어린이예술제가 보여주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 세계 인구가 남녀의 비율이 비슷하게 자연증가하고 있다는 것 처럼, 참가 종목이 자연스러운 비율을 보인다. 올해의 참가 종목 비율은 14 참가교 중 무용 5, 사물놀이 3, 합창 2, 연극 4이다. 연습이 힘든 연극이 증가세를 보이고 있음은 반가운 현상이다. 어린이예술제가 양적, 질적인 다양성을 보임은 한국학교들의 건강 상태가 좋음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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