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밀이 없다

2011-05-20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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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논설위원)
얼마 전 첼시의 한 극장에서 스크린 오페라를 보았다. 이 스크린 오페라의 정식명칭은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고화질 라이브(Met Opera HD Live).
롯시니가 작곡한 코미디 오페라 ‘오리백작’(Le comte Ory)은 십자군 전쟁과 귀족계급을 풍자했는데 주인공에 페루 태생 후안 디에고 플로레즈(38)가 나왔다. 그는 검정 수녀복장을 하고 나와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하며 손짓, 발짓, 윙크 하나까지 완벽하게 잘했다.

더 재미있는 것은 휴식시간(Intermission)이었다. 보통 오페라를 보다가 인터미션이 되면 커피를 마시러 가거나 화장실에 다녀오는 등 잠시 불편한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켠다. 그런데 스크린 오페라의 카메라는 이 시간에도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지난 4월 아들을 낳은 후안 디에고 플로렌즈를 인터뷰하고 2부 무대배경의 거대한 조명 설치장면과 무대 뒤 수십여개의 와이어, 화려한 드레스 디자이너 인터뷰 등을 전문가 해설과 함께 보여주었다.

객석에 앉아서 우아하게 무대만 볼 수 있는 공연장과 달리 직접 현장 속 스텝의 한 명이 된 듯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한 이 스크린 오페라에서 예술의 대중화를 주창한 마케팅 전략을 느낄 수 있었다.최근 한국뿐 아니라 뉴욕 한인들 사이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는 MBC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가 있다. 서바이벌 형식의 프로그램은 누가 노래를 가장 잘할 것인지, 누가 탈락될 것인지를 보는 재미가 대단하다.


시청자들은 유명 연예인들이 보통 사람들과 똑같이 긴장해서 떨고 눈물 흘리고 패닉 상태가 되며 속내를 털어놓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프로그램은 순수한 노래시간보다도 연습장면, 대기실 모습, 공연 전 코멘트, 인터뷰 등을 통해 모두 다 발가벗겨 버린다.시청자들은 이를 보면서 유명인이 특별난 사람이 아닌 나와 똑같이 일반화되어 가까이 있는 이웃으로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메트의 스크린 오페라나 한국의 예능프로그램 ‘나가수’를 보면서 멀리 있는 고급문화나 스타들의 몸 낮춤에서 편안함과 동시에 ‘비밀이 없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다.

한편 스크린 오페라는 주관객이 백인 상류계급 중·노년층에서 팝콘과 콕을 마시면서 보는 젊은층을 끌어들여 생존전략에서 살아남았다. 메트 오페라는 2001년이후 6년간 계속 줄어들던 관객이 다시 늘고 있다고 한다. 2006년 시작된 이 스크린 오페라를 보고 오페라를 모르던 사람이 실제로 극장을 찾아간 것이다.그런데 성악가나 가수의 스트레스는 더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의 근접 촬영은 배우들의 사소한 표정 하나, 윙크까지 한눈에 보인다. 스크린 오페라에 나온 여배우 눈가의 자글자글한 주름은 물론 엑스트라라고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금방 카메라에 잡힌다. ‘나가수’의 출연 가수 땀방울은 물론 호흡, 맥박 소리까지 카메라는 잡아낸다.

오는 6월이면 엠넷 ‘수퍼스타 K3’가 미국과 일본, 중국에서 해외 예선을 개최한다. 미국 예선은 25일 뉴욕타임스 건물내 타임스 센터에서 치러질 것이라고 한다. 올해에도 ‘제2의 존 박’을 꿈꾸는 수많은 1.5세, 2세들이 지망을 할 것이다.안 그래도 가수가 되겠다고 몇 년째 한국에 나가있는 아들, 영화배우가 되겠다는 아들 뒷바라지 하러 온가족이 역이민한 가족, 가수가 되겠다고 검정 쓰레기봉지에 옷을 사서 몰래 내다놓았다가 가출한 딸 등 많은 사연을 지닌 한인 가정들이 있다.또 한차례 뉴욕에 한국행 연예인 바람이 불 것 같은데 연예인 희망 당사자나 부모는 어떤 각오를 해야 할까. 요즘 들어서는 연예인의 자격이 첫째는 물론 실력이지만 두 번째가 비밀이 없는 사람이어야 하는 것 같다. 결손가정에서 자랐거나 가족이 암투병 중이거나 이 모든 속내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면, 당신은, 당신 아이는 그러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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