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서운 아이들

2011-05-18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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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요즘 중·장년층 한인들은 대부분 동심을 활짝 펼치며 자랐던 아름다운 어릴적 추억을 간직하고 있다. ‘깊은 산속 옹달샘’ ‘과수원길’ ‘과꽃’ ‘오빠생각’ 등 맑고 아름다운 동요를 한목소리로 불렀고, 구슬치기·오자미·고무줄넘기·땅따먹기·숨바꼭질 따위의 재미있는 게임을 즐기며 시간가는 줄 몰랐었다. 어린이들이 방구석이 아닌 마당이나 골목길에서 마음껏 웃고 떠들면서 신나게 놀았던 옛날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어린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의 그림일 뿐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 요즘 아이들은 함께 노래 부르고 밖에서 뛰어놀면서 친구들과 정을 나누고 우애를 쌓는 것이 아
니라 한결같이 밀폐된 공간으로 들어가 죽어라 공부만 한다. 피아노나 바이얼린, 무용이나 그림 등에 묶여 동심과는 동떨어진 기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코흘리개 어릴 때부터 오로지 생존을 목표로 훈련에 훈련을 거듭하고 있다. 그 결과가 무엇일까?

팍팍한 성격에 거친 말투, 막가는 행동들이 어린 나이에 아무런 죄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온다. 청소년 폭력은 이제 중학교이상의 학생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폭력도 청소년들의 폭력을 뺨칠 정도로 가혹하다는 놀라운 보도가 지난주 한국에서 나왔다. 전문가들은 폭행의 개념조차 모르는 어린이들의 폭력이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것으로 진단한다.

한창 순수해야 할 어린이들의 언니, 오빠들의 왕따, 빵셔틀(힘센 학생이 요구하는 잔심부름), 집단 폭행 등 범죄행위를 거리낌 없이 답습한다. 언니가 맞는 것을 동생을 끌고 다니며 보여주는 아이도 있다고 했다. 이들의 폭력행위는 형사사건으로 다뤄질 만큼 가혹하고 잔인해 교사와 학부모, 전문가들도 놀랄 정도다. “바지 벗겨 사진 찍고 나체 사진 보내라”고 협박하는 가 하면, 초등학생들 사이의 성폭력도 다반사라니 도대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다.


꿈이 자라고 아름다운 미래가 영그는 새싹교실에서 폭력과 악행이 난무한다면 사자와 독수리들이 판치며 약육강식의 생존경쟁 무대를 펼치는 정글과 무엇이 다른가. 안 그래도 중·고교생 등 10대 청소년들의 교내 폭력문제가 사회문제로 대두돼 교육당국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는 마당에 초등학생 어린이들의 폭력행위까지 문제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청소년 폭력문제는 한인 학생들 사이에서도 왕따나 선후배 신고식에 관한 폭력행위가 종종 문제돼온 게 사실이다. 오죽하면 연방정부가 교내 왕따 추방법안까지 상정하고 나섰겠는가.
한인어린이와 청소년들의 폭력문제는 우리 사회도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지덕체위주의 참교육은 간 곳 없고, 교육도 세태도 일등제일주의, 황금만능주의로 치달으면서 유발된 극심한 경쟁이 빚어낸 문제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 우애, 사랑, 의리 등 기성세대들이 귀중하게 여겼던 개념과 정서는 우리 어린이들에게서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문명이 만들어놓은 스마트 폰과 인터넷을 통한 폭력성 게임이나 잔인한 영화들이 인간성을 말살시키면서 맑고 순수한 아이들의 동심을 앗아가고 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도록 몰아붙이는 어린이들의 사교육도 아름다운 동심을 빼앗는 요인이다. 한인부모들이 보다 나은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이민 왔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적지 않은 아이들이 보다 나쁜 결과를 맞는 경우가 많다. 부모들이 ‘돈’ ‘돈’ 하며 일만 하는 동안 아이들은 험난한 세상 속에 소리 없이 빠져들어 더럽고 혼탁한 색깔로 변해가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준 한국의 소파 방정환선생이 제정한 한국의 ‘어린이 헌장’에는 “어른이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보아 주시오. 어린이를 가까이 하시어 자주 이야기하여 주시오...” 라는 대목이 있다. 세상이 아무리 혼탁할지라도 가정에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존중하고 가까이서 자주 만나 서로 소통만 잘 한다면 아이들은 결코 흉측하고 무서운 괴물
들로 변하지 않을 것이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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